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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 설레임속 얘기꽃/평양고보ㆍ평이중학 올 총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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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 설레임속 얘기꽃/평양고보ㆍ평이중학 올 총동문회

입력
1990.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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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ㆍ학계 등서 5백여명 참석/「고향의 봄」 노래땐 끝내 목메28일 상오11시 평양고보ㆍ평이중의 90년도 정기총동문회가 열린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룸에는 어느해 모임보다 망향의 설렘과 귀향의 기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이날 동문회에는 노신영 전국무총리,이익흥 전내무부장관,김윤경 서울고등법원장,박인각 전충남지사,김주흥 전서울시부시장,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유기천의원(민자),한환진 전대법원판사 양정수 전부산지방법원장,장시죽 의학박사 등 평양고보ㆍ평이중 출신 각계원로 5백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연회장 헤드테이블을 중심으로 최근의 잇단 남북교류를 화제로 얘기꽃을 피웠으며 두고온 고향과 모교에 대한 추억담이 풍성했다.

윤덕선 총동문회장(70ㆍ한림대이사장)이 교기를 들고 입장하자 소리높여 교가를 부르던 반백의 동문들은 모임 말미에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노래를 부르다 끝내 목이 메고 말았다.

실향민으로 축사를 한 홍성철 통일원장관은 『「평고보」는 왜정때와 그 이후로도 우리나라의 큰 일꾼을 키워낸 명문고일뿐 아니라 선친의 모교이기도 하다』면서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여러분들이 앞장서달라』고 말했다.

1899년 평양 일어학교로부터 시작한 평양고보는 1911년 조선교육령이 공포되면서 정식명칭을 얻게됐으며 경성의 경성제일고보와 함께 조선최고의 명문고교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학생들을 위해 평양중을 만들면서 평양고보를 평양제이중으로 학교명을 바꾸는 등 탄압을 했다.

국내에는 2천여명의 동문들이 있으며 78년 동문회를 결성했다. 79년부터는 학창시절 교지인 「대동강」의 명칭을 그대로 딴 동문회회지를 발간해오고 있다.

동문회는 지난해부터 통일의 의지를 함양하는 뜻에서 통일세미나를 갖는 등 자랑스런 전통과 정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문회는 앞으로 남북민간인 교류가 시작되면 남북 단일총동문회를 열 꿈에 부풀어 있다.<이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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