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바람에도 보수논조 유지/87년후 쇠퇴… 작년 600만부로한때 세계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며 소련 권력상층부의 견해를 대변해온 소련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가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 속에 발행부수가 격감,위기에 처해 있다.
프라우다지는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기 5년전인 1912년 레닌이 러시아의 차르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신문으로 창간당시 발행부수는 고작 6만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10월혁명 이후 프라우다는 소련 권력의 핵심인 당 중앙위원회의 공식적인 대변자로서 모든 소련인에서부터 위성국가와 서방세계의 정치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매일 1천1백만부를 찍어내는 세계최대의 신문으로 발전했다.
러시아어로 「진실」이라는 뜻의 프라우다가 액면 그대로 진실만을 말해온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크렘린의 권력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는 「정직한」 반영자였다.
1953년 프라우다가 당시 KGB 총수였던 베리야의 이름을 볼쇼이극장의 행사 참석자명단에서 빼놓았을 때 어느 서방국가이 대사는 『베리야가 체포된 듯 하다』고 본국정부에 보고했다.
정말로 베리야는 그때 이미 체포돼 있었음이 후에 밝혀졌다. 이렇게 세계최고의 발행부수와 영향력을 누려온 프라우다가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은 지난 87년 이후이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정책이 본격화 되자 소련인들의 신문구독률은 크게 높아져 개혁노선을 표방한 신문ㆍ주간지들이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게 된 것.
이에 따라 「논거와 사실」 「모스크바 뉴스」 「아가뇨크」 등의 개혁파주간지들은 인기가 상승,「논거와 사실」지는 발행부수가 3천5백만부에 이를 만큼 성장했으나 반면 보수적 논조를 유지해온 프라우다는 발행부수가 격감,88년에는 9백만부,지난해에는 절반가량인 6백만부로 떨어졌다.
게다가 지난 1일 현재 91년도 정기구독 신청부수는 50만4천부에 불과해 구독신청기간을 15일간 연장해야만 했다.
올해들어 발행부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정기구독 신청건수가 이처럼 격감한 것은 지난 몇달간 수십만명의 당원이 공산당을 탈당한 반면 구독료는 오히려 2.5배가량 인상됐기 때문이다.
프라우다 편집국장 이반ㆍ프롤로프는 세계적인 신문으로서 살아남을 정도로는 발행부수가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발행부수가 회복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프라우다는 연간 1천8백만달러의 흑자를 보이고 있으나 발행부수가 5백만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적자가 불가피하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프라우다의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편집국장을 전격 교체했으나 기자와 간부들은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프롤로프국장이 정통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며 강경파 정치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반발,3주전에는 국장의 교체를 당중앙위원회에 건의하는 투표를 실시하기까지 했다.
프라우다도 다른 개혁파 신문처럼 정부의 정책과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하고는 있으나 당 기관지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창간 이후 78년간 소련 공산당과 운명을 같이 해온 프라우다의 쇠퇴는 곧 소련공산당의 조락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남경욱기자>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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