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당 「지도체제」 불신벽 못넘어/재야마저 이견으로 한계 노출/「책임전가」 공방 펼칠 듯의원직 총사퇴 이후 한껏 달아올랐던 야권통합논의가 결렬선언이란 요식행위만 남겨놓은 상태이다. 그동안 평민ㆍ민주 양당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온 통추회의(상임대표 김관석)는 오는 26일 공동대표 실행위원 연석회의를 갖고 입장을 최종 정리한 후 기자회견 형식으로 「중재 포기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야권통합논의가 급속히 냉각돼버린 외양상 이유는 김관석 상임대표의 「최후통첩 서한」에 대해 평민당이 수용의 뜻을 밝히고 민주당이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은 평민ㆍ민주 양당이 통합협상과 함께 제시한 전제조건이 너무나 뚜렷한 평행선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평민당은 모든 협상논의의 카드가 「김대중 총재를 중심으로 한 신당 건설」에 속셈이 있었던 반면,민주당은 「신당의 대표는 김대중 총재가 되어선 안된다」는 전제하에 통합논의에 나섰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야당은 이같은 「의도」를 표현할 경우 상대방이 응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너무나 잘 읽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표현은 숨겨둔 뒤 「협상용 방안」이란 이름으로 간접적인 목적달성을 추구해왔다. 때문에 지난 봄의 10인 협상대표단회의(평민ㆍ민주 각 5인씩)나 의원직 사퇴 이후의 15인 협의기구(평민ㆍ민주 및 통추회의 각 5인)에서도 구체적으로 지도체제 문제를 논의하기만 하면 그 순간이 곧 결렬될 숙명을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평민ㆍ민주 양당은 3인 공동대표ㆍ집단지도체제ㆍ당 대 당 지분대등이란 주요조건에 합의,결렬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처럼 보였지만,결국 「신당을 누가 이끌어갈 것이며,누구를 당 대표로 14대 총선 및 차기 대통령선거에 임할 것인가」의 문제에 이르자 서로가 『차라리 통합 않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기울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같은 이중성은 소위 통추회의 「8ㆍ24안」에 대한 양측 주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통추회의는 지난 8월24일 양당에 제시한 절충안으로 핵심문제인 지도체제와 관련,「통합등록 이후 전당대회까지는 평민ㆍ민주ㆍ재야의 3인이 공동대표로 하고 그 이후는 3인이 합의해서 전당대회서 결정한다」는 문안을 제의했다. 이에 대해 평민당은 즉각 환영을 표시했으나 민주당은 반대했다. 민주당은 합당등록을 한 후에 3인이 합의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세의 열세로 평민당측에 묻혀버리게 되고 김대중 총재가 당의 대표로 되면 자신들의 지역구에서 선거를 치르기조차 힘들게 되어 자칫 잘못되면 통합야당에서 축출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해왔다.
그 결과 중재자인 통추회의는 9월4일 『8월24일의 「3인이 합의」란 표현은 사전에 3인이 합의하는 것』이라며 이기택 총재의 「선 조정 3자회담」 제의를 지지,민주당측에 8ㆍ24안 수용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9월4일 수정」을 전제로 「8ㆍ24안」을 수락했으며 그 결과 평민ㆍ민주 양당이 「동일안」을 수용함으로써 통합이 가시권에 들어선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결국 평민ㆍ민주당은 『8ㆍ24 원안이 맞다』 『9월4일 수정안이 옳다』며 대립을 하게 됐고 이 가운데서 통추회의쪽에서도 두 갈래로 의견이 나뉘었던 것이다.
김관석 상임대표 등 개신교그룹은 평민당의 해석에 동조했고 이부영 씨 등 민주연합그룹은 민주당 주장에 공감하고 나섬으로써 중재에 나섰던 통추회의마저 의견대립과 갈등을 표면화시킨 꼴이 됐다.
지난 22일 김관석 상임대표의 「최후통첩 서한」 파동도 이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결렬선언의 요식행위만 남기게 됐고,오히려 이를 위한 조치란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평민당과 민주당이 서로의 복안은 감춰둔 채 명분에 눌려 열정없는 논의만 계속해온 것이 확연해져버린 셈이다.
평민당은 23일 당무회의에서 『평민당의 통합방안은 9월4일안이 아닌 8ㆍ24안이다』라고 최종결론을 내리고 『더이상 통합논의는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일부 서명파 의원들이 『더 노력하자』고 항거했으나 대세는 기운 셈이다.
민주당도 이날 정무회의에서 통합문제를 끄집어내긴 했으나 『9월4일안 이외의 방안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당론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평민ㆍ민주는 결렬선언 자체마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통추회의에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정병진 기자>정병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