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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 정치부장(평양을 다녀와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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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 정치부장(평양을 다녀와서:3)

입력
1990.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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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ㆍ의식 모두 뿌리깊은 이중성/곳곳 세계적 건축물… 주변 황량/통일열도 “우리 식대로만” 집착북한사회의 이중성은 외양부터 두드러졌다. 이상과 현실이 조화되지 못한 공산주의의 이중성이 북한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평양에는 실제 세계에서 제일 크고 제일 높은 「세계 제일」이 많다.

대동강변의 주체사상탑은 높이가 1백70m나 되는 석조탑으로 미국의 워싱턴 모뉴먼트보다 4m가 높다.

김일성 주석의 70회 생일 때 헌납됐다는 평양 개선문도 60m 높이로 파리 개선문보다 10m가 높다. 금색을 입힌 높이 18m짜리 김일성 주석의 동상도 규모에 있어서 세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남북축구경기가 있었던 능라도의 5ㆍ1경기장은 수용인원 15만명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이다. 골조가 완성된 채 공사가 중단된 도심의 류경호텔도 1백5층 높이로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보다 높아 역시 세계 최고이다.

이러한 세계 최대 최고의 조형물들은 상당수가 대동강 주변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TV에 비쳐지는 평양시가는 웅장하고 신비스런 세계적인 「낙원의 도시」로 투영된다.

그러나 세계의 최고와 세계의 최대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변이 너무나 빈약하다. 서울의 잠실에서 외곽으로 벗어나는 길쯤에 세계 최대의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도대체 무엇이 이같은 「비능률적」이고 엉뚱한 세계 제일을 강요했을까.

파리의 개선문 주위엔 위풍 당당하고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가 펼쳐지지만 평양의 개선문은 아직은 한산한 거리에 혼자서 버티고 서 있다. 서울의 36층짜리 롯데호텔 주변에는 엇비슷한 빌딩들이 들어차 있지만 류경호텔이나 45층짜리 쌍둥이 건물 고려호텔은 덩그런 외톨이의 모습이다.

기자가 3박4일간 묵었던 백화원초대소는 수만평의 인공호수를 끼고 있고 발목이 잠길 듯 푹신한 카펫이 깔린 국빈용 숙소다.

화장대에 비치된 「살결물」(스킨로션)이나 「물크림」(로션)의 역겨움은 그렇다손 치더라도,북한에서 최고품이라는 「천리마」 라디오는 스위치를 켠 뒤 7,8초쯤 지나서야 겨우 소리가 나온다. 진공관 라이오인 것이다.

평양에서의 첫느낌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차량이 드물다는 것이 첫번째다. 지하철이 있고 무궤도버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적할 만큼 차량이 드물다.

행인이 적고 저녁 8시쯤이면 거의 인적이 끊긴다는 것이 두번째다. 어떤 안내원은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라고 했고,또다른 안내원은 「저녁학습」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차림이나 외양은 우리로 말하자면 서울의 50년대말,중소도시의 60년대 중반쯤으로 보면 큰 잘못이 없을 것이다. 여인네들의 옷차림은 투박한 치마저고리가 주로였고 인민복 비슷한 기성복이 대부분 남성들의 복장이다.

컬러풀해졌다고는 하나 빨강 노랑 초록 등 진한 원색이어서 세련되지 못한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곳곳에서 세계 제일을 주장하지만 황량한 주변환경과 주민들의 생활수준에 생각이 미치면 「공허」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외양상의 이중성은 북한사회 전체의 이중성으로 이어지고,마침내는 의식구조의 이중성에 귀착된다.

누군가는 평양을 가리켜 「구석기시대」와 「현대사회」가 공존하는 「돌연변이의 사회」라고 했다.

그들의 이중성은 김일성 부자 세습문제,북한의 생활상,통일문제 등에 이르면 더욱 극명해진다.

기자가 김 부자 세습문제를 슬쩍 건드렸더니 안내원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역정을 냈다.

『부장 선생은 세습의 의미를 잘 모르오. 봉건사회에서 왕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게 세습이오. 사회주의국가에서는 탁월한 자질과 인민의 신망이 있을 때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오』 완전한 안면몰수다.

세습의 부정적 측면을 잘 알면서도 세습을 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현실이 이렇게 강변되는 것이다. 1인 지배,세습 등의 용어에 대해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는 이면에 바로 이들의 취약성이 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게 입에 붙었다. 사고와 표현이 괴리된 일상행동의 반복이 의식구조의 이중성을 가져왔을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45년간 이같은 행동을 되풀이해왔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조그마한 선물을 주든 값비싼 선물을 주든 일단은 무조건 거부다.

『일(필요) 없습네다. 우리는 없는 것이 없습네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님의 지도와 배려로 먹고 입고 자는 걱정을 잊고 지냅네다』 깜깜절벽이다.

선물을 「정표」로 주고받는 상식은 실종돼 버렸고,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이들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일반 주민들의 목소리만은 아니다. 만찬장에서 만난 사회지도급 인사들까지도 통일에 대한 북한의 주장은 이중의 단계를 지나 자기모순적이다.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디요. 천만에 말씀입네다. 독일이 통일됐고 조선과 일본이 손을 잡기 시작하고 있는 걸 잘 압네다』 북한을 대화의 장에 나오게 만든 국제정세는 그런대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 식(북한식)대로 되어야 합네다.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가 반통일입네다』 「한 민족 한 국가」를 근거로 하는 연방제 통일외에는 모두가 반통일적 접근이라는 철벽의 논리이다.

통일을 위한 대화를 하자면서도 자기들 통일방식이 아니면 반통일로 몰아붙이는 자기모순이 지배하는 북한이다.

이러한 이중적 의식구조가 주민들 스스로를 자기최면에 빠지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기자가 수없이 받은 질문중의 하나가 「콘크리트장벽」이었다.

­선생님. 판문점 넘어올 때 콘크리트장벽 봤디요.

『봤지요』

­땅크가 산꼭대기를 올라가지 못하디요.

『못하지요』

­거봐요 선생님. 그런데도 남조선 당국은 땅크 저지용이라고 우기고 있잖습네까.

이때마다 기자는 『탱크도 못 올라가는 산꼭대기에 사람은 어찌 올라가겠느냐』는 말과 함께 손을 꼭 잡아줬다.

겉과 속이 달라야만 하는 이유가 없어질 때 북한의 실상은 좀더 적나라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때가서야 합리적 자(척)로 북한을 잴 수 있다.

어쩌면 그때까지 우리는 두 꺼풀중 한 꺼풀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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