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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못찾는 「이기택 민주호」/정국 해빙조짐에 고민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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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못찾는 「이기택 민주호」/정국 해빙조짐에 고민 가중

입력
1990.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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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야권통합 총재 사퇴와 맞물려/선명성 경쟁도 지지기반의 성향과 달라이기택 민주당 총재의 「우울한 방황」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 총재는 이러한 「방황의 끝」을 어디서 찾으려 하는가.

이 총재는 지난 13일 보라매집회에서 누구보다 강하고 선명하게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쳤으나 대회장을 빠져나오면서 일부 군중들로부터 돌팔매를 당했다.

이 총재는 이들이 평민당의 사주를 받은 당원들의 짓이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충격은 컸던 것 같다. 『경상도에서 배신자 소리를 듣더라도 평민당과 뜻을 같이해 야권통합을 이루겠다”고까지 했던 「결심」에 대한 응답이 돌팔매로 나타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보라매집회 후 이틀간 북아현동 자택에서 칩거하다 측근들에게 연락도 없이 설악산에서 며칠밤을 세웠다. 『아무 생각 없이 물과 돌을 구경했다. 눌러앉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잠적 닷새 만에 내뱉은 귀경의 변이었다.

이 총재의 고민은 야권통합에 대한 마무리와 향후 민주당의 위상정립 문제로 요약되어지지만 통합 마무리는 등원 여부와 자신의 총재직 사퇴발언과 맞물려 있고 당의 위상문제는 재야관계와 연계되어 있어 문자 그대로 「혼돈상태」의 고민이 중첩되고 있다.

더구나 이 모든 문제가 당내의 2분적 인적 구성으로 사사건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철ㆍ김정길ㆍ노무현 의원 등 소위 「선 사퇴파」 의원들의 당위 논리와 박찬종ㆍ김광일 의원과 일부 원외인사들의 현실감각은 매 사안마다 거의 같은 기세로 대립,이 총재에게 선택의 결단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통합의 경우 『통합이 안되면 총재직을 그만두겠다』고 기자회견까지 했으며 다시 『평민당의 독자동원 순간 통합은 끝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실상의 「이기택 당」으로 출범한 민주당에서 이 총재의 사퇴는 현재의 민주당 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비록 다시 전당대회 등을 통해 이 총재를 추대한다 하더라도 가뜩이나 탄탄치 못한 당 총재의 위상은 크게 손상을 입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등원문제만 하더라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의 유권자들은 국회내에서 싸우길 원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등원고려」보다 「사퇴고수」의 목소리가 당내에서 더 높다.

국회 본회의장 한쪽 구석에 묻혀버리는 8석의 부피를 절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퇴정국을 주도했다는 민주당의 유일한 공을 스스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 총재의 이같은 혼돈은 당의 노선 설정에서 나타난다.

당초 김영삼ㆍ김대중 두 김씨 퇴진을 의미하는 세대교체를 당론으로 하여 출발했지만 통합논의 과정에서 김대중 총재와의 단독회담에 이어 통합신당에서의 공동대표제를 주장함으로써 세대교체론 자체를 스스로 무너뜨린 꼴이 돼버렸다.

이 총재의 이같은 모순은 보안사 사찰사건이 터지자 보상심리에 의한 선명성 경쟁으로 다시 나타났다. 13일의 보라매집회에서 재야 국민연합이나 민중당보다 더 「선명」하게 현 정권을 공박해야 했으며 「조건부 노 정권 퇴진」을 주장한 평민당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등 그 후 모든 성명ㆍ논평에서도 재야를 능가하는 「선명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년 이상 현실정치의 바탕을 체험한 이 총재로서는 누구보다도 깊이 『이래서는 안되는데…』라고 느끼고 있다. 특히 조기총선 주장이 사실상 무효화돼버린 현 상황에서 14대 총선까지 1년 이상을 견뎌내야 하는 민주당으로서는 「재야성 투쟁」으론 민주당 지지자들의 입맛을 이끌어나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야권통합이 사실상 무산돼버린 지금 이 총재는 민주당이 「새출발」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이 총재가 새출발을 선언하는 날이 「방황의 끝」이 될 것이지만 「새출발」 선언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방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정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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