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의 늪에 빠져 꼼짝도 하지 않던 경색정국이 드디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임시국회에서 민자당이 날치기를 자행하고 그에 대응해 평민당이 의원직 사퇴서를 던지면서 시작된 경색정국은 그동안 무더운 여름을 넘기면서 지겹게도 국민들을 괴롭혀 왔었다. 정기국회가 열려도 악화된 사정은 여전했다.의원직 사퇴서가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는 단식이라는 비상수단까지 동원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단식인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들이었으나 단식의 효과는 의외로 빨리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는 자신이 단식 경험자인 탓인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단식중인 김총재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뤄진 양김씨간의 단독요담이 정국을 꿈틀거리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경색정국의 숨구멍을 트게 한 민자당의 당직개편은 10일의 당무회의와 의원총회에서 나온 「3역에 대한 책임추궁과 불만의 토로」가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나 두 김씨간의 단식회담이 촉매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민자당이 당직개편을 시발로 경색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를 열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여당이 새로운 진용을 갖추고 대야 관계를 개선하여 정국을 제대로 가동시킬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무엇인가 꿈틀거림을 보이고 있다는 것 자체는 환영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민자당체제는 합당 당시 모습 그대로였다. 그동안 분열과 파쟁으로 일그러진 합당체제는 개편을 통해 일찌감치 이미지개선을 시도했어야 했다. 때가 늦긴 했지만 이제와서라도 개편을 단행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대감에 부풀었던 인사개편의 내용은 한마디로 실망만 안겨주고 있다. 지금까지 당내외에 실망을 주고 무능하다고 비난받아온 합당체제가 자리만 바꿔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나마나한 당직개편이 되어버렸고 개편이란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개편이 된 셈이다.
개편의 의미는 정국을 끌고갈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 낡은 체제가 일단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새로운 진용에 임무를 맡기는데 있는 것이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무슨 새맛이 날 수 있을 것이며 똑같은 그 사람들에게서 무슨 새로운 기대를 걸 수 있단 말인가. 새로운 팀에 의해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말 사람이 그렇게도 없어서인지 나눠먹기에 찢겨서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번 개편은 구태의연한 합당체제에 대해 심기일전의 기회를 다시한번 부여하는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로 인한 당내외의 불만은 어떻게 할 것이며 어려운 정국과 시국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파쟁에 찌든 민자당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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