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생애/멕시코 정서와 서구 사조 접목/스페인계로 외교관생활… 시 창작 큰 영향/고독ㆍ고뇌묘사… 언어해방 추구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옥타비오ㆍ파스는 전위와 인간정신의 끊임없는 탐색으로 특징지워지는 20세기 정신의 아들이며 그 완성자이다.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가 초현실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3년전인 1914년 멕시코시티의 스페인가계에서 출생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심취해 왔으며,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다이즘,미래주의,이미지즘 등 들끓던 전위운동의 세례를 받으면서 초현실주의의 문학적 기류위에 정착했다.
멕시코국립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1931년 「바란달」이라는 잡지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등단했으며 시동인 「타예르」를 주도하기도 했다. 1937년부터는 스페인에 거주하면서 라파엘ㆍ알베르티 등 당대의 유명한 스페인 시인들과 교분을 맺었다. 그의 시작업이 하나의 특징적 마디를 이루게된 계기는 미국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1945년 파리주재 외교관으로 임명되면서부터이다. 이때 그는 프랑스문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초현실주의 및 실존주의 사조와 본격적으로 조우한다.
파스의 문학은 그의 외교관경력을 떠나 설명될 수 없다. 그의 시에서 중요한 색채를 띠고 있는 동양적 정신의 영향도 장기간에 걸친 인도대사생활을 통해 얻어진 것이었다.
그의 시는 하나의 진화과정을 보여준다. 「야상곡」「불면」등 초기 시에서 그의 작업은 인간의 고독이라는 내면적 잠재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1958년에 출판돼 86년 우리나라에도 번역소개된 「태양의 돌」에서 그의 제2기가 시작된다. 아즈텍문명의 전설에 바탕한 이 시집에서 그는 프랑스 텍스트분석방법인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초현실주의의 경향도 동시에 나타내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서정시가 인간의 고독을 탐색하면서 멕시코의 풍요한 자연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고 수상이유를 설명했다.<장인철기자>장인철기자>
글
어느 고적한 시간
종이에 붓이 글을 쓸 때,
누가 그 붓을 움직이나?
나를 대신해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에게 쓰나?
입술과 꿈으로 얼룩진 해변,
조용한 언덕,좁은 항만,
세상을 영원히 잊기 위해 돌아선 등어리.
누군가 내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내 손을 움직이고,말을 고르고
잠깐 멈춰 주저하고
푸른 바다일까 파란 산등성이일까 생각하면서.
차가운 불길로
내가 쓰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불태운다,정의의 불.
그러나 이 재판관도 역시 희생자일 수밖에 없다.
나를 벌한다는 것이 스스로를 벌하는 일.
실은 그 글은 아무에게 쓰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위해 쓴다.
자기 자신 속에 스스로를 잊는다.
이윽고 뭔가 살아남은 것이 있으면
그건 다시 나 자신이 된다.<민용태역>민용태역>
◎주역ㆍ노장등 동양사상 심취/작품세계 분석/언어의 의미ㆍ작가 창작성 부정/시읽는 방법까지 독자에 맡겨
옥타비오ㆍ파스의 시는 한마디로 난해하다.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에 입각해 토해내는 그의 시들은 언어의 의미를 부정한다.
그는 시를 통해 언어자체가 의미를 갖는게 아니라 잃어버린 사물과의 거리를 좁히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주어진 의미를 파괴함으로써 우리에게 현실을 인식시키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시의 사상은 신적인 언어의 창조를 위한 몸부림에서 출발한다는 그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파스는 인도의 철학이나 동양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장사상이나 주역에 대단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는 멕시코 마야문명을 동양문화와 같은 위치에 올려놓고 그 원류역시 동양사상에서 출발했다고 믿는다.
실험적인 경향을 대변하는 그의 시집 「백지」(1966) 같은 경우는 심지어 시를 읽는 방법에서까지 독자들의 자유로운 읽기를 요구한다. 동양의 두루말이식으로 된 이 시집은 전체를 하나의 시로 읽을수도 있고 왼쪽에서도,오른쪽에서도,둘을 섞어서 읽을수도 있도록 짜여 있어 독자의 독서방법이나 수용능력에 따라 각각 다른 시적인 미학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작가의 창작성 자체를 부정한다.
왜냐하면 작가의 의도가 시속에 모두 담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이 쓰는 언어,환경,통제,심지어 우주만물까지 작품형성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과연 내 시에 몇퍼센트의 내 창작이 작용했을까』하고 그는 반문하곤 한다. 멕시코에서도 그의 시는 대중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그는 멕시코의 문명을 새롭게 인식시켜주는 유일한 인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시어는 의미가 아니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도구라는,실험적 경향이 강한 그의 시들은 우리에게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번역조차 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고독의 미로」등 산문집이나 평론부터 읽는게 좋다.<민용태 고대교수ㆍ스페인문학 시선집 「태양의 돌」번역>민용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