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ㆍ서독의 통일에서 보았듯이 분단된 국가의 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은 교류가 쌓이고 쌓여 통일여건을 조성해간 것이 통독의 기초가 되었다. 지금 한반도에도 그 어느때보다 통일열기가 높아가고 있다. 우리도 독일의 경우처럼 인적 교류,물적 교류를 쌓아가는 게 절실할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분단 45년 사이에 이질화돼 버린 우리 말과 글부터 통일되게 가다듬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5백44돌 한글날을 맞은 감회는 그래서 더욱 뜻이 깊다.민족공유의 언어를 쓰면서도 남북이 소통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언어의 이질화가 심각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소련인 한국학자 유ㆍ마주르 교수(현재 연세대에서 노어강의중)같은 이마저도 『남북한간의 글과 언어의 이질화를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안타까워했겠는가.
우리는 역사시작이래 공유해온 우리 말과 5백44년 전에 창제되어 나라의 글이 된 「한글」에 대하여 「좋은 말ㆍ좋은 글」이라는 자만심만 키워왔지,말과 글을 계속 다듬어 발전시키는 일은 소홀히해왔다. 그래서 우리 말의 순수성과 자주성을 지키는 실제적인 노력은 극히 일부 국어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왔을 뿐이다. 특히 정부차원의 정책과 지원이 한없이 빈약했음을 우리는 더없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언어중 가장 발전되고 정리가 잘된 언어라는 프랑스어를 갈고닦는 프랑스 국립한림원의 경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문화국을 자부하는 나라들이 나름대로 자국어와 글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범정부차원에서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괜한 국수주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찌됐건 정부가 뒤늦게나마 국립국어연구원을 설립키 위해 직제를 마련하고 내년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은 때늦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정말 잘하는 일」이라고 높게 평가하고 싶다. 정부는 지난 88년 1월 학술원 산하에 국어연구소를 설립운영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직제도 그렇고 예산의 뒷받침도 형편이 없어 그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새로이 발족할 국립국어연구원는 이를 확대개편하고 직제도 별도로 한다니 종전의 국어연구소와 같은 유명무실한 기구가 되지 않도록 연구원 확보와 예산투자에 인색해서는 안되리라 믿는다.
국립국어연구원가 해야할 일은 사실 중차대하다. 「통일 이후」에 대비하기 위해 남북언어와 문자표기방식의 통일방안 연구로 「남북의 말과 글」의 이질성 극복,어휘의 수집과 순화를 위한 표준국어사전 편찬,한글의 기계화와 과학화 사업,생활언어 순화방안연구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어렵고도 방대한 사업이라고 할 만하다.
이같은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은 국어연구원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일 듯하다. 정부의 끈질긴 정책의지와 국민들의 절대적인 성원에 의해 「우리 글ㆍ우리 말」을 가다듬고 발달시키려는 노력이 뒤따를 때 소기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글날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가 이 중대한 일을 성취해야겠다는 「무언의 합의」를 이뤘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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