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의 정치사찰에 대한 문책이 예상보다는 조기에 단행됐으나 「수재인책」 때처럼 정치적 효과는 함량미달인 듯하다.수재 때는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와 실정으로 여론이 나빴으나 이번에는 그 위에 정부의 도덕성 훼손,정치 복원에 대한 무능과 무책에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무기한 단식이라는 악재까지 두루두루 겹쳐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위기국면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이다.
정치가 복원되기를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오히려 사태가 반대로 악화돼 가고 있으니 국민의 심정은 한없이 참담하기만 하다.
정부ㆍ여당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페르시아만 사태,고유가,우루과이라운드,일ㆍ북한 접근 등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외환에다 물가고,수재,정정불안 등 연쇄적인 내우가 겹치고 있는데도 시원스러운 타개책을 제대로 내놓치 못했으니 국민의 좌절감은 이제 만성화된 고질이 돼 버렸다. 내각제 개헌문제,지자제 실시 등 현안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며 야당이 등원의 명분을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 데도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끝내 위기국면을 초래한 데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앞으로 정국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는지 불길한 예감을 뿌리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나라가 만성적인 불안요소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당장 넘어갈 정도로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다고는 보지 않는다. 우리는 사태가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한 데 대해 몹시 놀라고 있다. 야당이 국회에 들어가 모든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대안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무기한 단식」이라는 충격요법이 불쑥 등장해서 더욱 그러하다.
물론 김대중 총재는 많은 생각을 한 끝에 강공의 수단을 선택했을 것이다. 단식이라는 정치투쟁에 대해 평소 평가가 낮았다는 김 총재가 그같은 결론에 도달한 데 대해서는 많은 근원인을 제공한 쪽이 정부ㆍ여당이라는 추론을 세우기가 어렵지 않다. 하나 우리가 보기에 지금은 5공을 극복하는 과도기지 5공 때와 같은 한계상황은 아니다.
정치활동 금지나 규제를 받는 입장도 아닌 버젓한 제1야당의 당수가 국회라는 싸움터를 방치하고 단식이라는 극한 투쟁의 길을 택했을 때,그것이 국리민복을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총재의 행동을 지지하는 입장도 많겠지만 더 많은 국민은 불안과 불신을 말할 것이다.
국민은 극한대립이 가져오는 불필요하고 무익한 국력소모에 넌더리가 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서 김 총재가 싫어하는 양비론이 아마도 강하게 고개를 쳐들지 모른다.
등원하라는 여론의 압력과 정부ㆍ여당의 우유부단한 자세 속에서 고뇌하던 김 총재가 자신을 거는 마지막 배수의 진을 침으로써 정부ㆍ여당은 더욱 입지가 좁아진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의 정치관행으로 보아 당장 정부ㆍ여당이 해답을 낼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위기국면이 더 심화되기 전에 사태를 수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며,그러기 위해서는 「결단」이 전제가 될 것이다. 평민당도 단기간 내에 단식투쟁을 끝낼 생각을 해야 한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한반도 외교의 난기류 속에서 우리가 지금 내정싸움으로 한 세월을 허비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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