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5공 그림자」 살아 있었다/정경희(아침조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5공 그림자」 살아 있었다/정경희(아침조망)

입력
1990.10.09 00:00
0 0

○「칙사」냐 오랑캐냐『칙사 대접한다』는 말이 있다. 중국황제의 사신이 칙서를 받들고 온다는 통보를 받으면 조선왕조는 국경인 의주에 먼저 원접사를 보내서 맞이했다. 의주에서 서울에 오기까지 다섯군데서 선위사가 나가 잔치를 베풀고,서울에 당도하면 「말에서 내린다」해서 하마연을 베풀었다. 또 이튿날부터 왕세자ㆍ종친부ㆍ의정부ㆍ육조 등에서 줄줄이 잔치를 베풀었다. 돌아갈 때에는 명주ㆍ털가죽ㆍ지필ㆍ칼ㆍ은 같은 선물도 주었다.

그것은 중국이 강대국일뿐 아니라,세계유일의 「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칙사」가 아닌 사람은 「오랑캐」야만인일 뿐이다.

1백19년전 대원군은 전국의 요소마다 비석을 세우고 경계했다. 『서양 오랑캐(양이)가 침범해 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요,화친하자는 것은 곧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24년이 지나자 이 나라는 「오랑캐」를 등에 업은 사람들이 엎치락 뒤치락 세상을 요리하고 있었다. 친일파로 유명한 이완용은 원래 러시아를 등에 업은 친로파였다. 고종 임금이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간 소위 「아관파천」의 주역인 이범진이 친로파의 거두였다.

이 나라의 임금을 손에 넣고 쥐었다 폈다했던 러시아가 85년만에 서울에 돌아왔다. 해방이후 6ㆍ25전쟁을 치르고,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에 이르기까지 45년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한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은 것이다.

○한반도에 영향력 노려

그것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어떤 것』(갤브레이드 교수)이 이념대립의 종말을 고하고 있는 시대적 산물이다. 「칙사」가 아니면 「오랑캐」밖에 모르던 우리로서는 얼핏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만해도 서독의 콜수상은 독일통일이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었다.

그것이 지난 3일,그러니까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진지 1년만에 현실이 됐다. 통일독일이 2차대전 후의 국경선을 존중하고,소련에 대해 최대 2백억달러에까지 이를 것으로 짐작되는 경제원조를 한다는 조건으로 소련이 동독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이다.

북한의 저항을 무릅쓰고 예정보다 빨리 소련이 한국과 수교한 것도 동북아에서 이념대립과 냉전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소련으로서는 23억달러 규모의 경제협력보다 동북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셰바르드나제)인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고,85년동안 단절된 관계를 회복해서 영향력을 확보하자는 더큰 정치적 계산이 있을 것이다.

「두개의 조선」을 반대한다는 김일성이 어느날 갑자기 일본의 집권 자민당대표 보고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라 하고,금환신 대표는 『북한측이 일본의 제안을 이해해줘 울고 싶은 기분』이라고 낮뜨거운 맞장구를 쳤다. 소련의 정치적 포석이 던진 충격을 알만하다.

세상은 지금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세상이 뛰고 있다면,제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은 변함없이 이땅에 뿌리박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북한은 남북 총리회담을 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실체인정을 거절하고,그러면서도 유엔에 단일의석으로 가입하자는 우스개같은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소련과 한국의 국교수립을 「더러운 배신」이라 욕하면서 일본과 국교를 트자하고,「우리식」이라는 구호밑에 김일성의 이름으로 바꾼 스탈린주의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보안사 파동과 5공 청산

아직은 꿈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한반도의 통일도 궁극적으로는 인권이 보장되고 시장경제와 다원적 의회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막강한 열강이 맞대어 있는 통일한국은 상당한 무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국가이익을 보장하는 자주독립국이 돼야할 것이다.

그것은 「칙사」가 아니면 「오랑캐」가 아니라,미국이건 소련이건 흥정의 상대로서 그리고 힘의 균형을 구성하는 국제정치의 상대로서 합리적으로 대할줄 아는 자주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민주화와 사회적인 화합이 확보돼야 한다.

그런 뜻에서 지난날 전두환 정권의 「권력의 산실」이었던 보안사가 아직도 국민을 감시해 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은 이 나라의 민주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돼야 할 것이다.

나라를 지킬 국군의 보안을 맡은 보안사가 야당정치인과 비판적인 지식인과 학생들을 감시해 왔다는 사실은 물론 충격적인 일이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야당정치인의 여성관계를 뒤지고 금전관계와 「도피처」까지 예상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다.

그러고도 국방부는 「유사시 보호할 목적으로」 감시해 왔다는 웃기는 해명까지 했다.

통일을 이룩한 독일을 배우자고 한다면 우리는 서독의 의회민주주의와 「사회적인 정의」를 배워야 한다. 입으로는 민주화를 외면서 국민을 「적군」처럼 정찰ㆍ정탐해온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한 두사람의 책임자를 갈아치우는 것만으로 청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북의 스탈린주의체제보다 정치적ㆍ도덕적으로 한발짝 앞서자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5공 유산청산을 위해 본질적인 개혁과 손질을 기대한다.<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