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편의 따른 경제희생 안된다/팽창예산에 긴축기조 흔들려/안정바탕 일관된 정책실행을9월말 현재 국내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에 달해 연말물가 한자리수 유지가 어려울 전망이다. 계속되는 수출부진에다 수재,페르시아만사태등 악재등이 겹친 가운데 물가상승까지 더해진다면 우리 경제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물가안정을 비롯한 경제정책의 주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에 관해 노성태 제일경제연구소장의 의견을 듣는다. 이와 함께 지난 9월17일자 본란에 게재되었던 최렬 공해추방운동연합공동의장의 「원전건설의 위험성」을 지적한 견해에 대한 반론을 싣는다. 이와 아울러 「경제인광장」은 각종 경제이슈에 대한 모든 경제인들의 다양한 견해를 수렴하는 지면이므로 기탄없는 의견개진을 환영합니다. 투고내용은 2백자원고지 8∼9매 정도로 요약,한국일보경제부(서울 종로구 중학동14) 「경제인광장 담당자 앞」으로 보내면 됩니다.<편집자주>편집자주>
물가불안은 금년내내 계속되어 왔었는데 특히 최근의 중동사태로 유가가 급등하게 됨에 따라 이미 타오르고 있는 불에 기름이 더해진 격이 되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대응은 방향이나 내용이 뚜렷하지 못하여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거 두차례의 석유파동시 정책 대응 경험과 현정부가 처한 정치적 여건을 토대로 앞으로의 물가움직임을 내다 볼때 그 전망은 극히 어둡다고 할 수 밖에 없다.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던 73년 하반기는 유신체제가 도입된지 얼마안된 시점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이 확대되지 않도록 정책선택은 성장과 고용에 지나친 충격을 주지않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또한 성장제일주의라는 3공화국의 정책기조와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73년중 현금통화,통화,총통화등의 증가율은 그 전해의 두배에 이르렀고 그 이후에도 유동성은 계속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성장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실업률이 오히려 석유파동이전보다 더 떨어지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그대가로서 인플레율(도매물가)은 74년에 40%를 넘어섰고 우리경제는 오랫동안 그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같은 시기에 물가안정에 정책우선순위를 두고 국제수지가 악화되는 상황하에서도 환율절상까지 감행하였던 대만의 도매물가가 75년에 곧바로 안정세를 되찾았던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반면에 제2차 석유파동이 들이닥쳤을 때인 79년에는 우리도 이미 안정화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중화학부문의 대규모투자가 불러온 부작용을 수습하기 위해 경제정책은 성장보다 인플레억제에 역점을 두고 실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79년에 각종 통화지표의 증가율은 그 전해에 비해 크게 떨어졌고 8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긴축기조는 계속되었다. 그 결과 물가는 80년의 40% 상승이라는 최악의 고비를 넘긴 후 점차안정세를 찾게되어 마침내 82년이후부터는 한자리수 물가의 실현을 보게되었다. 그대신 한동안 성장의 위축,실업의 증대,정치적혼란이 뒤따랐으나 얼마안있어 경제회복이 가능하였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정치적 편의를 위하여 경제정책의 선택이 그르쳐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웅변해주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걱정이 되는 것은 향후의 정치일정,그간의 경제운용실적들에 비추어볼때 자칫하면 1차파동때의 정책대응방식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내년부터 치러지기 시작할 크고 작은 선거들을 염두에 둔다면 집권당이나 행정부측의 강력한 안정화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이미 내년도 팽창예산은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있고,수출부진과 증권시장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할 때 금융부분에서 긴축기조가 강화될 것 같지도 않다. 여기에다 노사분규 재연과 평가절하의 가능성을 더해본다면 내년이후 물가불안의 심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런식으로 나갈 경우 앞으로 1ㆍ2년간 성장이나 고용은 그다지 나빠지지 않을 줄 모르나 인플레압력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리경제는 물론 93년에 새로 들어서게 될 새 정부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5공화국의 유산중에서도 가치있는 것은 계승하고자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물가안정에 총력을 다해야 할 시점으로 생각된다. 국가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정치적 압력과 모든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정부가 솔선수범하여 일관성있고 강력한 물가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선택을 할 때인 것이다. 유가급등이라는 또 한번의 충격을 슬기롭게 넘기고 빠른 시일내에 경제안정을 되찾는 방안을 지금 경제팀이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몸에 좋은 대부분의 약이 그러하듯이 입에 쓰기 때문에 주저할 가능성이 있는 점이 마음에 걸려 한번 독려해 보는 것이다.<노성태 제일경제연구소장>노성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