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가 들고있는 날이 시퍼런 식칼을 본 순간 소름이 끼쳤으나 어렵게 사는 달동네를 침범한 범인이 가증스러워 오기가 생겼습니다』추석연휴 마지막날인 4일 밤9시30분께 서울 중구 중림동 지연미용실(주인 김순임ㆍ49ㆍ여)에 침입한 특수강도 등 전과6범 유재덕씨(28ㆍ무직ㆍ주거부정)를 격투끝에 붙잡은 유혜경씨(41ㆍ여)는 격투중 어깨를 다쳐 한평 남짓한 전세방에 누워있으면서도 「또순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유씨는 연휴로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담아 어두컴컴한 골목어귀를 지나면서 2층미용실에서 들려오는 여자비명에 긴장했다.
『돈은 다 드릴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손님을 가장해 미용실에 들어온 범인이 품속에서 30㎝ 길이의 부엌칼을 꺼내들고 협박하자 여주인 김씨 모녀가 애원하며 신음같이 지른 비명이었다.
유씨는 때마침 우연히 만난 동네주민 김현철씨(34)와 같이 2층계단을 올랐다.
금품을 털어나오던 범인과 유ㆍ김씨는 순식간에 뒤엉켜 계단을 굴러내리며 치고 받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식칼든 강도를 때려 잡은 「여장부」에게 머리를 숙여 감사했다.
20여년을 서울역앞 달동네인 이 곳에서 살아온 유씨는 1백50㎝의 가냘픈 체구에도 남자 못지않은 괄괄한 성격에 의협심이 강해 동네경조사에도 항상 앞장서왔다.
유씨는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좀도둑이 끊이지않아 마음이 아팠다』며 『한식구처럼 사는 이웃이 위기에 처한 사실을 알고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며 대수롭지않은 일이라며 기자를 만나려하지 않았다.
고향이 인천인 유씨는 67년7월 취직차 상경,가난하면서도 인정이 메마르지 않은 중림동이 좋아 아예 정착했다. 파출부,막일 등을 닥치는대로하며 푼푼이 모은 돈으로 지난4월 반지하전세방을 얻은뒤 요즘엔 제화기술을 익히고 있다.
10여년전 남편과 이혼했으나 이웃끼리의 사랑으로 외롭지 않다는 유씨는 하루 일거리를 놓치고 집에 누워있으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소매치기가 칼부림을 해도 못본척하기가 일쑤인 세태속에서 맨손으로 강도를 잡은 여장부에게 주기로 한 「용감한 시민상」은 너무 빈약한것 같다.<송용회기자>송용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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