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수교ㆍ독일통일 등으로 “단일의석안” 설득력 적어/“하나조선” 포기미지수… 오늘 판문점 접촉서 드러날 듯/실질변화땐 남북관계 큰 영향북한이 지난 1일자로 유엔안보리에 제출한 서한내용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박길연 주유엔 대표부 대사가 안보리 의장인 데이비드ㆍ한네이 주유엔 영국 대사 앞으로 보낸 서한은 『북한은 단일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설득력있는 접근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나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고 밝혀 북한의 입장변화를 시사한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표명은 지난 5월24일 김일성이 시정연설에서 유엔단일의석 가입안을 제안한 이후 이 방안을 대외적으로 적극 홍보해오던 터에 스스로 태도를 변경한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또한 유엔총회가 개회중이고 남북한간의 제2차 고위급회담을 15일가량 앞둔 상황에서 이 서한이 제출됐다는 사실은 고도의 정치적 복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측면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북한이 유엔 가입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는 향후 북한의 대남정책,즉 남북 관계의 방향을 가름하는 나침반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유엔 가입노력 및 세계 각국의 가입 지지분위기에 따라 북한이 선회할 경우 이제까지 남북 관계개선의 주요한 걸림돌로 작용해왔던 북한의 「하나의 조선」 논리는 자연스럽게 폐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서한에서 밝힌 입장이 기존의 단일의석 가입주장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대한 청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이 자신들의 단일의석 가입주장을 폐기하고 우리측의 공동 가입방안을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최근의 객관적인 상황은 북한에 선택의 여지를 주지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남북한이 별개로 유엔에 가입할 경우 두개의 조선으로 분단을 영구화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동서독과 남북예멘의 예는 이같은 주장을 현실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오랜 동맹국인 소련도 백러시아 등 연방소속 공화국이 별도로 유엔에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 유엔헌장 규정이나 실질적인 운영상의 측면에 비추어도 단일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한다는 북한의 주장은 대외적으로 설득력을 갖지못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유엔가입여건은 북방정책의 성공,국제지위격상,유엔내 보편성원칙의 강화 등으로 점차 무르익어가고 있다.
이번 유엔총회기간중 기조연설을 마친 92개국(10월2일 현재) 가운데 한반도문제를 언급한 국가가 61개국인데 이중 한국의 유엔가입을 지지한 국가는 41개국으로 집계됐다.
또한 남북대화와 평화통일에 지지를 표명한 국가는 모두 17개국이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유엔 가입지지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을 비롯, 우방국들의 지지발언이 계속된 것은 물론 91년도 비동맹외무장관회의 주최국인 가나 등 과거 우리의 입장에 반대를 표시하던 상당수국가들이 한국가입지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오는 10일까지 60여개국이 더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어서 우리의 유엔가입을 지지하는 국가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총회기간중 유엔에서 있었던 한소 수교는 이같은 한국의 유엔 가입 지지분위기를 더욱 고양시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번 유엔총회에서 많은 국가들이 한국이 유엔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말이 안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면서 『우리의 유엔 가입에 대한 지지열기는 지난 해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북한의 단일의석 가입주장에 대해선 어느 나라도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중국 쿠바 에티오피아 등 북한의 전통우방 3개국만이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통일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으나 이들 국가도 유엔 단일의석 가입문제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처럼 대세가 한국의 유엔가입쪽으로 기울고 단일의석 가입방안에는 전혀 관심이 모아지지 않자 북한은 몹시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한국이 이번 총회의 분위기와 한소 수교 등을 활용해 연내에 유엔가입안을 내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유엔 가입 저지의 보루인 중국도 막상 유엔가입안이 제출될 경우 반드시 반대표를 던져 주리라고 확신하기는 어렵게 되어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은 최소한 단일의석 가입방안은 우리측의 유엔 가입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과연 단일의석 가입 주장을 포기하는 대신 우리측의 공동가입 방안을 수용할 것인지는 역시 미지수이다. 북한의 변화를 강요하는 주변상황은 충분히 성숙했으나 북한이 곧바로 「하나의 조선」정책을 포기하리라고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정부관계자들은 북한의 이번 서한을 『변화의 조짐』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북한이 우리 입장을 수용하는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밝히고 있다.
북한은 단일의석 가입주장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자 우리의 유엔 가입 지지분위기를 희석시키기 위해 입장변화가 있는 듯한 제스처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즉,새로운 제안이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잡고 세계의 시선을 고위급회담으로 쏠리게 해 시간을 벌자는 작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이 채택하고 있는 정책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미봉책이더라도 이러한 입장으로 몰아가고 있는 주변상황은 북한의 자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게 정부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유엔문제에 관한 북한의 명확한 입장은 5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유엔 가입문제 실무접촉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정광철 기자>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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