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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협박/이재열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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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협박/이재열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0.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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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법 남부지원은 지난 26일 이후 판결에 불만을 품은 「얼굴없는 협박」에 시달려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법원뿐 아니라 고문수사를 했던 전 보안사대위에게 실형 2년을 선고,법정구속함으로써 사법부의 고문수사 응징의지를 보여주었던 이석형 판사(40)의 집에도 『무사할줄 아느냐』 『가족들을 해치겠다』는 정체불명의 전화폭력이 계속되고 있다.서울지검 남부지청이 29일부터 이같은 협박전화를 공권력과 사법부에 대한 능멸,도전행위로 간주,전면수사에 나섰으나 국민들은 수사차원을 떠나 사회의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비열한 협박에 공분을 느끼고 있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소문으로 나돌던 일부 군수사기관원의 그릇된 수사행태를 폭로하고 불법적인 밀실 가혹행위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국민들의 소리를 대변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협박사건으로 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88년 여름 전국을 떠들썩하게한 중앙경제 오홍근 사회부장 테러사건을 상기하고 있다.

박군 사건은 5공 철권정치를 종식시킨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오 부장 테러사건은 정보사령부 장성 2명 등 7명이 구속됨으로써 「범법행위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는 수사기풍을 세우면서 군에는 큰 상처를 입혔다.

남부지원이나 이 판사 집에 걸려온 전화도 전ㆍ현직 군수사기관요원을 자칭하고 있어 군이 혹시 뼈아팠던 과거를 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군의 힘으로 사법부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발상에 의한 협박전화라면 민주화를 앞당기려는 6공시대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어두운 과거의 악령이 살아 있다는 공포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이 판사는 전 보안사대위 이성만 피고인(45)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판결문을 통해 『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의 법집행 종사자가 윤리성 공정성과 양심을 저버리고 가혹행위를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 판사는 20여차례 걸려온 협박전화에도 『개인적으로 전혀 개의치 않고 있으며 고문행위는 어떤 수사기관에서도 근절돼야 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 용기와 양심을 국민이 보호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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