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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전력과 취업의 벽(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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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전력과 취업의 벽(사설)

입력
1990.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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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일각엔 시위전력자와 운동권 출신을 볼온시하는 시각이 분명히 있다. 학생운동이 과격ㆍ폭력화함에 따라 그들에 대한 기피현상은 소리없이 번져갔고 이제는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혀 그 역기능까지 생기고 있는 시점이다.대학을 나온 젊은이가 시위전력 때문에 취업의 관문을 못뚫고 자살을 택했다는 것은,사회 일부의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는 데서 시대의 비극을 다시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젊은이의 죽음을 개인적인 생활환경과 관련된 우발적인 것으로 보아 넘기기엔 그 심각성이 너무나 깊다고 할 것이다.

학생운동은 수십년간 쌓여온 우리나라 정치ㆍ사회ㆍ경제의 부조리로 인해 생겨난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데 크게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줄 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와 학생운동의 양상이 화염병과 투석 등으로 폭력성이 강화되면서,지지기반이 약화되고 오히려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순수한 학생운동이라면 목표의 정당성과 수단과 방법의 윤리성을 마땅히 갖춰야 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결함이 있으면 순수성은 의심받게 마련이다. 일부 운동권 학생들은 이 한계를 아주 쉽게 뛰어 넘었음을 부인 못할 것이다.

공직사회나 기업은 안정을 밑바탕으로 성실과 온건을 언제나 요구한다. 따라서 과격성을 금기로 여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살한 젊은이는 이런 상반된 현실과 요구에서 갈등을 겪고 불행하게 생명을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의 하나는 갈기갈기 찢길 듯한 상호배타주의이다. 이런 풍토가 있는 한 아무리 화합을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지향할 바는 관용의 사회이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빚어낸 불화와 갈등으로 유능한 젊은 인재를 희생시키거나 사장시킨다는 것은 옹졸하고 비인도적인 처사일 뿐이다. 또한 이런 세대를 비록 소수라고 하나 소외계층으로 밀어낸다는 것은 결국 정치ㆍ사회적 불안요인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당장 골치 아프다고 제쳐 버린다면 사회적 조화와 균형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와 일터는 이제 상당한 포용력을 키워 왔음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세월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로 인간의 성숙도도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나친 경계심은 풀어 마땅하리라 믿는다.

한꺼번에 해결할 일이 아닌 만큼 사안에 따라 경미한 경우부터 점진적으로 일터를 개방해나가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회는 고루 주고 인재는 키워 갈 의무가 모든 직장에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고우나 미우나 젊은이는 우리의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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