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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3일(하나의 독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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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3일(하나의 독일:5)

입력
1990.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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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ㆍ서유럽」와해 「중부유럽」부상/통독,대소협조ㆍ동구장악 확실/나토는 대독 견제기구로 변화/대결상황 종식… 공존질서 바탕 「유럽일가」로 접근독일통일이 유럽과 세계의 중대사건으로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유럽의 기존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란 예상때문이다.

지난해 동구권의 민주화사태로 전후 40년간 지속된 유럽의 냉전적 분단질서가 붕괴됐을 때 세계는 『유럽의 전략지도가 새로 그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신전략지도」의 작성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독일의 향후 행보를 정확히 가늠하기 전에는 동구권의 붉은 색을 지우고,독일전체를 하나의 색으로 통일하는 것만으로는 미래의 유럽의 정치지도를 그렸다고 할 수 없다.

전후 분단질서의 축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군사적 대치였다. 「동구해방」과 함께 바르샤바기구는 지난 6월 정치조직으로의 전환을 선언,군사동맹체로서는 사실상 소멸됐다.

여기에 임박한 나토주축 서독과 바르샤바기구의 주축 동독의 통합은 「적」을 상실한 나토의 존재의의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나토회원국들은 나토체제의 고수와 통일독일의 나토잔류를 유럽의 안보확보의 대전제로 주장해왔다. 냉전해소에도 불구하고 소련등의 잠재적 위협은 남아있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서독도 「나토잔류」를 일찌감치 선언,이 주장을 수용했다. 이 때문에 통일독일의 중립화를 주장한 소련이 통독의 최대외부장애로 간주됐었다.

지난 7월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은 콜 서독 총리와의 정상회담후 『통일독일은 자유로운 동맹선택권을 갖고 있다』고 선언,독일의 나토잔류를 받아들였다. 당시 나토고수론자들은 이를 고르바초프의 「불가피한 양보」로 규정,「승리」를 자축했다. 언론들은 『서독이 경제원조로 통일을 샀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선언은 실제 나토의 종말을 예고하는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독소 합의선언의 행간에는 나토의 대소 군사동맹체로서의 역할종식을 추구하겠다는 독일의 약속이 숨겨져 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분석은 「독소 밀약」의 배경을 나토의 존재에 대한 양측의 공통된 인식에서 찾고 있다. 양측은 모두 미국이 나토를 쇠퇴하고 있는 대 유럽영향력의 유지를 위한 마지막 연결고리로 삼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 독일 주변국들은 통일독일의 독자적 군사노선추구를 막기 위해 나토잔류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독일과 소련은 모두 서방승전국들의 「통일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나토잔류선언에 합의했다는 분석인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통일후 독일의 나토이탈,또는 나토의 기본성격변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독일을 지키기 위한 나토」가 아닌 「독일로부터 주변국을 지키기 위한 나토」를 독일인들이 더이상 수용하지 않으리란 예측이다.

통독후 서독지역에 잔류할 서방 7개국군의 장래도 같은 맥락에서 전망되고 있다. 미군 25만명을 비롯한 영ㆍ불ㆍ벨기에ㆍ덴마크ㆍ캐나다 등의 이들 외국군은 당초의 「점령군」에서 「보호군」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들이 각국의 이익보호를 위한 달갑지 않은 주둔군으로 간주하고 있다.

나토의 역할퇴조가 명백한 상황에서 유럽질서의 골격을 그리려는 논의는 무성하다. 나토의 정치기능강화나 EC의 안보기능부여,35개국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강화등이 모색되고 있다. 미국이 걸프만사태에서 애써 강력한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도 유럽의 독자안보능력의 취약함을 확인시키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논의들은 아직 미래의 유럽질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유럽질서를 나폴레옹 전쟁후의 빈회의체제에 의한 평화질서에 비유하는 시각이 대두하고 있다. 즉 유럽의 현 상황은 승자와 패자의 차별이 없는 평등한 공존질서로 이미 접어 들었고,각국도 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는 이를 『미국도 유럽에 잔류해야 하고,소련도 배제돼서는 안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유럽일가」구상에 접근한 이같은 새로운 유럽의 공존질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부상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독소간의 협조체제와 독일의 동구 장악 추세다.

서독은 전후 40년간 서유럽동맹에 편입돼 있었고 EC건설에도 깊이 참여,서유럽과 절연될 수는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통일과 함께 독일은 다시 중부유럽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이는 소련과의 협조체제 구축을 세력균형게임의 당연한 전제로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일과정에서 드러난 모스크바­본 간의 협조체제는 통일후 모스크바­베를린간의 구축관계로 한층 밀접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통일과 함께 되살아날 독일의 「중부유럽의식」은 막강한 경제력과 동독을 통한 동구권에 대한 「직접지식」과 어울려 독일의 동구장악을 예견케 하고 있다. 영국의 전 통산장관 니콜라스ㆍ리들리는 이를 『독일은 해변에 수건을 깔아놓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것도 부적절한 비유로 평가되고 있다. 동구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해변은 아니며,독일은 이미 동구를 자신의 뜰로 간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분단을 중심으로 했던 유럽의 전후질서가 무너진 지금 통일독일은 동ㆍ서유럽 양쪽을 모두 지배하는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글ㆍ사진=강병태베를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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