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아시아지역에서 탈냉전외교라면 구체적으로는 우리측의 「북방외교」가 전부였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과 소련이 국교수립단계에까지 온 것이 동북아에 있어서 냉전체제 청산을 향한 첫 구체적 성과였다.일본의 집권 자민당대표가 평양을 방문,김일성과 「우호관계 수립」에 합의한 것은 동북아의 탈냉전 외교무대에 새로운 가능성이 등장했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은 지금까지의 태도를 일변해서 형식상 일본정부의 대표도 아닌 집권 자민당대표에 대해 파격적인 예우를 베풀고 있다. 소위 「국빈」이 묵는 백화원 초대소에 묵게하고,청소년 5만명을 동원해서 매스게임으로 환영했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 스스로도 가네마루(김환신) 대표에게 『옛친구를 만난 기분』이라는 「찬사」를 들려줬다.
일본측의 가네마루대표도 북한이 일본측 제안을 이해해줘 감격한 나머지 『울고싶은 기분』이라고까지 극언했다.
공식적으로 반세기에 이르는 적대관계를 탈냉전이라는 주변정세의 변화에 편승해서 새로운 화해로 돌려잡기 위해 북한과 일본은 상식이상의 「과잉연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잉연출 속에서 일본은 「배상」과 「사과」를 내걸고 북한은 「두개의 조선고착」이라는 교조를 접어둔 채 서로 연락사무소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그것이 앞으로 얼마만한 속도로 「새로운 관계」로 나타날 것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실질적으로 「조일관계」의 개선을 뜻하면서도 김일성은 아직도 「노동당과 자민당의 관계수립」이라는 상반된 말을 쓰고 있다. 또 일본측이 내놓을 「배상」의 규모도 문제다.
결국 김일성가네마루회담의 의미는 일본과 북한이 우리의 북방정책에 대응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자체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북방정책이 일방적으로 이끌어온 동북아의 국제정치무대에 일본이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해석된다. 물론 우리가 이미 「7ㆍ7선언」에서도 밝힌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다원적인 교류의 발전은 우리도 지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 일본의 교류관계 발전은 한반도의 탈냉전을 위해서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적어도 서울모스크바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식 이상의 「과잉연출」을 보면서 우리는 새삼 일본이 지나친 「실리외교」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탈냉전시대 동북아에서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확보하려는 지나친 야심을 행여 꿈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나카야마(중산) 외무장관도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중인 최호중 외무장관에게 북한과의 관계개선 문제는 『언제든지 한국정부와 협의할 것』을 다짐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은 한반도의 평화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동북아의 탈냉전은 한국과 소련ㆍ중국과의 관계발전에 그 장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일본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우리와 인식을 같이하고,궁극적으로 북한의 개방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사태를 이끌어가야 할 것임을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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