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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청산」 예상 앞지른 접근/김일성­가네마루 첫 회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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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청산」 예상 앞지른 접근/김일성­가네마루 첫 회담 의미

입력
199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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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식민지배 사과ㆍ배상 명분/일은 「전후처리 완결」ㆍ교역 실리/서로 다른 속셈… 국교정상화는 아직 일러북한의 김일성과 일본의 가네마루(김환신) 전 부총리 및 다나베(전변성) 사회당부위원장간의 사상 첫 회담에서 우호관계를 구축키로 합의한 것은 지난 45년간 적대관계를 지속해온 두 나라의 관계개선을 선언한 「사건」이다. 이는 동아시아의 안보와 국제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역사적인 외교의 결실로 받아들일 만한 일이다.

특히 후지산(부사산)호 승무원석방 문제가 해결된 것은 일본과 북한간의 가장 큰 외교장벽이 허물어진 「상징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지구상 여러나라 가운데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의 하나인 북한과만 국교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전후처리의 완결」이라는 명분과 교역 등을 통한 실리적인 이유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부단히 애써왔다. 그러나 언제나 후지산호사건이란 장벽에 부딪쳐 정부간의 접촉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북경 주재 대사관을 통해 대화제의를 해도 아무반응이 없어 우리의 뜻이 전달됐는지도 알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 일본외무성 관계자가 말하는 저간의 사정이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일본측의 후지산호 선원석방요구에 대해 『그 배로 망명한 민홍구 하사와 맞바꾸자』는 조건만을 되풀이,정치적 망명자를 돌려 보낼 수도 없는 일본으로서는 별다른 대안을 낼 수도 없었다.

그토록 답답하기만하던 숙원사항이 김일성의 정치적 결단으로 하루아침에 해결된 것은 두 나라 관계개선의 신호탄이다.

실제로 26일의 가네마루­김일성회담에서는 양국의 우호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됐다. 이 「우호관계」란 것이 국교정상화의 전단계라고 보기는 아직 빠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와 같이 적대관계를 지속시키지는 말자는 것이므로 양국관계의 커다란 발전이라 할 것이다.

이같은 정세급전에 대응,일본정부는 이날 일본여권의 북한 제외조항을 삭제키로 방침을 결정,북한의 「선물」에 대한 보답태세를 취했다.

마이니치(매일)신문에 의하면 일본은 연락사무소가 개설되어야 이 조항을 삭제하겠다던 지금까지의 방침을 바꾸어 방북단이 돌아오는 즉시 이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여권에는 세계 무수한 국가중 유일하게 「북한에서만은 이 여권을 사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있어 공식적으로 북한을 적대시하는 셈이어서 이번 회담의 분위기와 성과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식민지시대에 대한 사과와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합의,새로운 일ㆍ북한관계를 구축키로 한 것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국교를 맺는 것은 물론,정부레벨의 대화를 갖는 것조차도 「2개의 조선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며 조국 분단을 영속화하는 일」이라고 해서 극력 피해오던 북한의 최고실력자가 일본총리의 공식사죄문서를 접수한 것 자체가 큰 변화라고 할 것이다.

최고 당국자에 의한 성의있고 구체적인 사과를 하고,식민지시대 36년과 해방 후 45년 동안 북한을 적대시해온 데 대한 보상을 요구해온 북한의 가이후(해부준수) 총리의 사죄친서와 막후실력자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거듭된 사과를 받고,또 보상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가네마루의 정치적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관계개선의 명분을 찾았다.

뿐만 아니라 보상 및 경제협력을 받게 된 실리도 손에 쥐게됐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국교정상화를 전제로 한 정부간 접촉이나 연락사무소 개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보상문제 협의에 응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해온 일본정부도 최근 며칠사이 다소 유연하게 자세를 바꾸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배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외무성은 2차대전 당시 북한은 교전상대국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배상」은 할 수 없지만,식민지시대 서로간에 발생한 재산이나 청구권 문제는 남아 있으므로 「청구권」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즉 북한의 청구권에 대한 지불형식으로 일정액을 주고 국교가 정상화되면 경제협력도 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입장이다.

한편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정계일각에서는 국교정상화 이전이라도 북한상품의 관세를 인하하든지,세계은행 등 제3자 기관을 통해 경제협력을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또 자민당에도 의원입법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을 앞당겨야 한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정부가 응하고 싶지 않아도 경제협력은 생각보다 빨리 실현될 공산이 있다.

어쨌든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는 일본정부쪽의 생각과 전망과는 달리 훨씬 빠른 속도로 진전되게 됐다. 정부당국이 아무리 국제법과 관례를 내세우고,북한의 진의를 믿을 수 없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정계의 최고 실력자가 내린 정치적 결단과 약속에 배치되는 조치는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관계는 역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준 「45년 구수」의 대좌였다.<동경=문창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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