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인 의식」 계속 남을 것”/서독인 승리감 민족통합 저해/「사회주의 치유」 한세대는 걸려독일통일은 독일민족사와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사건이다. 따라서 그 의미에 대한 평가도 시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 동ㆍ서독 학자와의 연쇄인터뷰를 통해 체제와 이념을 달리했던 독일인들 자신이 평가하는 통일의 역사적 의미와 통일독일의 향후진로에 대한 전망을 살펴본다.
◇만프레트ㆍ괴르테마커 교수(베를린 자유대ㆍ현대사)
통일은 독일민족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독일민족은 다양한 민족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중부유럽의 인구조밀지역에 위치,역사적으로 제위치를 확보하기 어려웠었다. 이 때문에 중세부터 민족통일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제국이 형성됐으나,진정한 민족국가는 18세기말에야 대두될 수 있었다. 1871년의 최초의 통일후에도 주변국의 경계와 견제로 인해 독일은 계속 일종의 「표류」상태에 있었다. 45년의 분단은 독일이 통일을 오용,유럽의 기존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주변국들이 항상 통일독일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깔려있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은 더이상 표류하지 않는 국가다. 독일은 유럽사회속에 확고하게 편입돼 있고,주변국들과도 밀접하게 이해관계로 연결돼 있다』
통일의 가장 직접적 동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가장 결정적인 동인은 역시 소련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독의 경제력과 동독체제의 경제적 실패에서 주동인을 찾고 있으나,나는 의견을 달리 한다. 정통성이 없는 동독체제를 유지시켜온 것은 소련이었다. 그리고 동독민중의 「혁명」을 가능케한 것도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와 「불간섭」선언이었다. 독일통일은 소련의 중부유럽으로부터의 후퇴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분단을 지속시켜 온 것은 소련인가. 주변국의 「통독공포」는 해소됐다고 보는가.
『미ㆍ영ㆍ불 3개 승전국은 베를린장벽 붕괴전 이미 「통독지지」를 되풀이 선언해왔다. 그러나 이는 실현가능성을 예상치 않은 「값싼 약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영ㆍ불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국은 통독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 미국은 통일독일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우방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도 지난해말까지만해도 통일이 5년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장기적으로 보다 중요한 점은 미국은 통독이 EC통합과정을 지연,약화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영ㆍ불은 통일독일의 「효용성」에 심각한 의문을 갖고 있다. 영국은 유럽의 세력균형 파괴를 우려하는 전통적인 시각에서,프랑스는 통일독일에 대한 역사적 공포감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대처정부가 시대상황의 변화를 오산,고립을 택하고 있는 반면,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강력한 지지로 돌아섰다. 프랑스 여론과는 배치되는 미테랑의 태도는 「저지할 수 없다면 통제에 참여하겠다」는 현실판단에 따른 것이다』
향후 통일독일과 유럽의 진로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동독에서의 「사회주의 실험」의 후유증을 완전히 치유하는데는 한세대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문제는 단기간내에 해소되리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동독 경제부흥이 통일독일의 주된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은 동구권 전체를 재건해야 할 과제를 지고 있다. 동구권이 재건되지 않으면 유럽은 「제4세계」의 문제로 진통을 겪을 것이다. 이미 폴란드등으로부터의 대량 이민사태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영ㆍ불은 동구재건문제를 도외시하고 있고,미국도 소극적이다. 동구재건은 독일만의 힘으로는 벅찬 과제다』
◇데트레프ㆍ나카트 교수(동베를린 훔볼트대ㆍ역사학)
독일통일은 필연적인 것인가,아니면 우연인가.
『독일역사에서 통일국가는 예외적인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독일민족은 분단에 익숙한 민족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사태발전은 독일인들이 정치적 고려에서 강요된 분단을 거부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따라서 통일은 자연스런 것이다. 물론 통일의 계기는 동구권 전체의 민주화와 세계적 긴장완화에 의해 마련됐다. 그런 의미에서는 통일은 우연한 것이기도 하다』
독일민족에게 통일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주권의 회복과 4대 전승국의 통제제거는 독일민족에 커다란 책임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고 싶다. 독일은 앞으로 유럽과 세계의 평화질서 정착에 기여해야만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통일독일은 과거의 독일과는 다른 새로운 독일이 되어야 하고,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재통일」이 아니라 「통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의 유럽은 통일독일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 여러 측면에서 도움을 받게 되기를 많은 독일인들 스스로 바라고 있다고 믿는다. 미래의 구호는 「독일의 유럽」이 아니라 「유럽의 독일」이어야 한다. 그리고 국제적 측면보다 중요한 것이 민족내부 문제의 해결이다』
동독인들은 지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같은데 이는 경제적 상황의 악화를 말하는가.
『실업등 경제적 문제는 극복할 것이다. 문제는 역사적인 민족통합과정이 동독민중에게 불명예스럽고,정신적 품위를 저하시키는 충격요법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데 있다. 서독인들은 「승리의식」을 갖고 있고,동독 정치인들은 이에 영합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대중들도 과거를 잊고 있다. 그같은 충격요법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동독인들은 통일에 대해 환호하고 「서독적인 가치」,이를테면 질좋은 상품과 돈벌이에 몰려가고 있지 않은가.
『동독인들의 기본 행동양식은 앞으로도 서독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자제되고 신중한 태도보다 나이많은 사람에 대한 존중,사회문제에 대한 넓은 관심 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독인은 어떤 의미에서 서독인들보다 「독일적」이다. 서독인들의 일상생활과 의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화됐다. 일반대중은 모르지만 특히 동독 지식인들의 이른바 「동독인」의식은 존속될 것이다』
「동구에서의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고 이구동성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물론 동구권에서의 실험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이상이 완전히 소멸됐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사회주의는 다양한 형태와 개념을 갖고 있다. 지금 동구질서의 실험이 과연 사회주의 실험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오늘날 스웨덴에서 동독에서보다 훨씬 많은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역사적 진전과정은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통일 후 독일의 체제도 독일역사에서 최종적 형태는 아닐 것이다. 이상적 해답은 계속 추구돼야 할 것이다』<베를린=강병태특파원>베를린=강병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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