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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개방­폐쇄 갈림길에/고민하는 파드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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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개방­폐쇄 갈림길에/고민하는 파드 국왕

입력
1990.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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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왕위계승한 친미주의자/페만 충격에 「쇄국」탈피 저울질/회교율법 가장 엄격… 탈바꿈 미지수페르시아만 사태로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다국적군이 진주한 사우디아라비아가 「현대」와 「봉건」,「개방」과 「폐쇄」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한때 플레이보이로도 명성을 떨쳤던 파드 국왕(69)의 고민도 커가고 있다.

회교의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는 아랍권내에서도 회교율법이 가장 엄격하고 전통이 중시되는 폐쇄적 봉건주의 군주국. 아직도 여성들에게는 반드시 눈만 내놓은 차도르를 착용토록 하고 금주제도가 철저하며 도둑은 손을 잘라 버리는가 하면 공개처형도 존속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82년 즉위한 파드왕은 이런 분위기에서도 왕자시절엔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겨 전세계 사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람둥이」이자 도박꾼으로 소문이 자자했었다.

그는 당시 몬테 카를로의 도박판에서 하룻밤에 1백만달러를 날리기도 했으며 베이루트 나이트클럽의 모든 벨리댄서들을 알고 지낼 정도였다.

파드가 이처럼 돈을 물쓰듯하며 무절제한 호화판 생활을 하자 당시 이복형이었던 파이잘 국왕은 그를 사우디로 소환,『만약 국가의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놀기만을 즐긴다면 왕권을 이을 왕세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우디의 왕위계승권은 왕의 장남이 자동적으로 승계하는게 아니고 왕실전체의 의견수렴을 거쳐 왕세자를 결정한 뒤 왕이 사망하면 권좌를 이어 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ㆍ아지즈왕의 7명의 아들중 하나인 파드는 원래부터 야심이 많았기 때문에 파이잘 국왕의 이같은 경고가 있은 뒤부터는 언제 그랬느냐는듯 플레이보이 생활을 청산하고 문교장관에 취임,착실하게 정치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수개의 대학을 비롯,수백개의 각급 학교를 세우고 국교부터 대학까지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제도화한 그는 다시 내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행정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했다.

75년 파이잘왕이 암살당하고 그 동생인 칼리드왕이 취임하자 파드는 왕세자가 되었고 심장병을 앓는 왕대신 사실상 사우디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칼리드가 결국 82년 타계하자 파드는 1년에 석유수출로 벌어들이는 1천억달러를 사우디의 현대화에 투입하는 대역사를 벌였다.

그는 병원 학교 고속도로 스포츠센터를 짓고 모든 국민이 무료로 의료시설을 이용토록 하는 국민복지정책을 정력적으로 시행했다.

파드왕 자신도 석유수출로 인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사우디 왕가는 세계 어느 나라 왕실보다도 호화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

파드왕의 개인재산은 석유 1배럴당 떼는 베당금만해도 지금까지 약 1백80억달러에 달하며 거처하는 궁전도 수도 리야드의 25억달러짜리 알 야마마궁을 포함,12개나 된다.

전용 비행기도 여러대 소유하고 있으며 금으로 만든 욕조가 있는 6천만달러짜리 요트를 비롯,롤스 로이스 캐딜락 메르세데스 등 최고급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다.

당뇨병과 심장병 등 지병이 있는 그는 점성술을 믿고 있으며 잠을 잘때는 코란을 꼭 베개옆에 둔다.

일을 하는 습관도 괴팍해 해외별장이나 요트에서 몇주씩 휴식을 하다 한꺼번에 밀린 업무를 보며 대개 낮에는 잠을 자고 밤 11시부터 일을 하기도 하는데 외교사절이나 고위관리들을 새벽 6시까지 접견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습관은 예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관념이 희박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열렬한 친미주의자로 아들들을 모두 미국에 유학시켰으며 CNN 뉴스를 보기 위해 왕궁 곳곳에 TV를 설치했을 정도다.

파드왕이 미국을 찬양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유엔창설을 위한 회의에 참석했을때 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드왕의 이같은 친미성향에도 불구,봉건주의적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가 이번 사태의 충격으로 「쇄국주의」에서 탈피해 급격히 개방사회로 탈바꿈해갈지는 의문이다. 사우디가 그만큼 완고한 전통회교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군 주둔과 페만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파드국왕의 고민도 바로 이런데 있으며 앞으로 그의 후계자가 누가 되든 똑같은 갈등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이장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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