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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만사태 계기 아랍세계가 얻은 교훈(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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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만사태 계기 아랍세계가 얻은 교훈(세계의 창)

입력
1990.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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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민주화불씨 당겼다/쿠웨이트 국민 독재ㆍ부패 왕정에 염증/ 민간정부 수립으로 「새 질서」 주도 기대/미의 현상유지정책과 아랍각국 정보정치등 걸림돌 많아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야기된 페르시아만 사태에서 아랍세계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아직 승패가 결정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질문은 다소 성급한 듯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전개만으로도 이번 사태는 중동에서 「민주적 개혁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아랍인들에게 던지고 있다.

현 중동의 아랍 각국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터키제국이 멸망한 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이 멋대로 그은 국경선에 따라 국가로 출범했다.

이라크에 침공당한 쿠웨이트만해도 1차대전때까지는 터키가 점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쿠웨이트는 원래 페르시아만에서 진주채취와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베드윈의 후예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이라크의 압바스 왕조 통치지역이었다.

이곳은 1756년께부터 알ㆍ사바가가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해 오다 1899년 아예 압ㆍ바스 왕조로부터 도망쳐나가 영국에 보호를 요청,식민지배를 받아왔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는 본래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이나,쿠웨이트의 알ㆍ사바 왕가가 아랍인들로부터 이슬람을 배반한 가문으로 비난받는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알ㆍ사바가는 지난 38년엔 거꾸로 이라크의 하심국왕에 병합을 요청한 적도 있다.

아무튼 쿠웨이트는 2차대전 후 석유가 쏟아져 나오면서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영국은 가능한한 단물을 빨아낸 뒤 61년 당연히 자신들에게 계속해서 협조적일 알 사바가에게 정권을 물려줘 독립시켰다.

그후 그래도 당시 페만지역의 족장중에서는 다소 진보적이었던 알 사바 국왕은 의회를 설치하고 언론자유를 주는 등 민주적인 제스처를 보인적도 있으나 정권이 불리할 때마다 의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강경책을 서슴없이 써왔다.

원유수출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알ㆍ사바가는 지난달 2일 정권이 무너지기까지 그동안 약 9천억달러의 엄청난 자금을 해외에 투자해 왔다.

아랍세계에서는 약 2백명의 알ㆍ사바가 식솔들이 전세계 석유의 20%를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따라서 일부 아랍의 지식인들은 비록 사담ㆍ후세인 대통령이 옳지 않은 방법으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부패하고 독재를 저지른 왕정을 축출했다는 점만은 평가하고 있다.

또 많은 아랍인들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하더라도 알ㆍ사바 왕이 다시 복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쿠웨이트에 남아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일부 국민들이 도망치다시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알ㆍ사바왕을 다시 군주로 받들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대다수 국민들은 더 이상 독재나 부의 편중에는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민간정부가 들어서길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랍의 지식인들은 만약 쿠웨이트에 진정한 민주정권이 들어선다면 아직도 왕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바레인,카타르,아랍에미리트연합 등에도 민주화 도미노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가 이런 점을 간파한다면 쿠웨이트에서 과감히 철수,쿠웨이트의 민간정부 구성을 지원하는 고도의 전략을 쓰기를 희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담ㆍ후세인 정권자체도 「독재」라는 점에서 볼때 쿠웨이트의 「민주화」를 지원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후세인 대통령도 애시당초부터 그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며 쿠웨이트를 철수하면서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점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페만사태에서 이라크의 도발을 저지하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파견한 미국도 이런 입장에서는 이라크와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중동지역의 영향력 확대와 원유의 안정공급을 위해 군을 파병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으로서는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페만의 안보와 안정을 유지하고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철수시키며 알ㆍ사바 왕정을 회복시킨다는 것이 뚜렷한 정책방향이다.

따라서 일부 아랍전문가들이 이번 사태의 해결책으로서 쿠웨이트에 민간정부를 세우는 조건으로 이라크군을 철수시키자는 제안을 내놓은데 대해 미국은 쉽사리 동의할 수 없는 처지이다.

미국은 현재 왕정체제의 사우디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이를 방위하기 위해 군대까지 배치했는데 쿠웨이트 등의 왕정복귀 대신 민간정부를 들어서게 한다면 사우디주둔의 명분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목적은 아랍세계의 민주화가 결코 아니며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지난 50여년간 미국은 수사적으로 「민주주의」를 외쳐왔으나 자국의 이익에 반하면서까지 이를 고수해오지 않았으며 많은 독재정권을 지지해온 사례로 볼때 이 말은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

또 독재와 군주제로 현재까지 정권을 유지해온 아랍 각국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하루아침에 다원적 민주주의체제로 변화하리라는 기대 역시 순진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아랍 각국들은 그동안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군과 정보기관들을 장악,체제유지를 해왔다.

현 아랍 각국의 정상들을 보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79년) 하페즈ㆍ아사드 시리아 대통령(71년)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69년) 모로코의 하산2세 국왕(61년) 후세인 요르단 국왕(53년)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81년) 벤제디드 알제리 대통령(79년) 등 거의 대부분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동구대변혁에서 보듯이 민주화의 물결은 베를린에서 부쿠레슈티까지 밀물처럼 이어졌으며 그 여파는 북한과 쿠바를 제외하고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아랍 특히 이슬람교로 뭉쳐진 거대한 사회가 그 변화에 얼마나 둔감할 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려우나 이번 페만사태가 하나의 「불씨」를 제공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많은 아랍인들은 후세인 대통령이 그동안 자신들이 열망해 왔던 두가지 기대를 만족시켜 주었다고 보고 있다.

그중 하나는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인위적으로 분리시켰던 아랍에 통일기운을 불러 일으킨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서방에 대항할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준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힘은 그동안 서양문명에 밀려 뒷전에 처져 있었던 찬란한 아랍문화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라고 아랍인들은 믿고 있다.

아랍은 지금 「구질서」가 서서히 그 시대를 마감하고 「신질서」가 형성되고 있다고 일부 아랍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이장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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