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왜 갑자기 중국갔을까/한중 관계개선 저지 “급한 걸음”/유엔 거부권ㆍ원유지원도 목적/중국선 대한부담 의식 등김회담 회피등 소극적북한주석 김일성의 중국 방문은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응키 위한 북한의 고육지책인 것으로 분석된다. 의전을 중요시하는 사회주의국가간의 정상급 만남이 수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일 뿐더러 그동안 중국 관계전문가들이 파악한 바로는 중국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일성 또는 김정일의 방중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경 아시안게임이 끝나기 전에 김일성등이 방문할 경우 새로운 부담을 안게 될 것을 우려,이들의 방중을 꺼려왔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올해초부터 북경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중관계가 개선될 것을 의식,중국측에 이 기간중 태극기 게양금지등 무리한 요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은 공식적인 한중 관계개선에 어쩔 수 없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으나 북한측의 계속되는 견제에 부담을 느껴온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김일성의 방중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이번 방문에서도 특정국가의 정상을 북경에 초청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따라 회담장소를 심양으로 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일성이 중국측의 이러한 소극적 태도에도 불구,중국 방문을 강행한 것은 그만큼 최근의 대내외정세에 절박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우선적으로 한중 관계개선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이번 방중을 추진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는 이번 북경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중국과 관계개선을 증진시킨다는 방침아래 아시안게임 지원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에 앞서 우리측은 중국과 연 30억달러의 교역을 하는등 실질적인 측면에선 이미 상당한 관계개선을 이룩했다.
우리측의 대중 접근노력에 따라 한중관계는 급속한 진전을 보여 이번 아시안게임기간중 우리측 영사단이 비공식적으로 중국에 들어가 선수단 및 참관단 등 교민들의 신변보호ㆍ영사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또한 아시안게임 후에는 서울과 북경에 상호 무역사무소를 교환설치하고 이 무역사무소에 외교관을 파견,영사업무를 담당토록 한다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제까지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비공식적인 실질접촉은 허용하되 공식적인 정부관계는 불허하다는 방침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이라크의 아시안게임 참가허용 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어 명분보다는 실리를 따르는 쪽으로 선회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실리중심의 외교를 펴고 있다.
따라서 대세가 한국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한중 양국간 실질협력관계가 심화될 경우 공식적인 관계로 급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일성은 이같은 판단 아래 한중 관계개선의 속도를 늦춰줄 것을 중국측에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특히 한소 관계정상화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외교적 고립을 면하기 위해 중국과의 밀착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이 지난 2,3일 북한을 방문해 한소 관계에 대한 소련의 입장을 설명한데 이어 이번 유엔 총회기간중 뉴욕에서 한소 외무장관회담이 열린다는 사실등은 북한을 더욱 다급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한소 관계개선등 우리측의 북방외교에 자극받아 미국ㆍ일본 등과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2개조선반대」라는 자체 입장 및 미국의 대북 경계심때문에 외교적 고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김일성은 이러한 외교적 고립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측과 「맹방」의 현주소를 보다 분명히 확인하려 했을 것이다.
북한은 이와 함께 우리측의 유엔 가입문제에 대한 중국의 거부권행사를 재차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은 단일의석 공동가입문제 논의를 위한 실무기구 구성에 합의를 얻어냄으로써 유엔 가입문제에 대한 시간을 벌었으나 우리측이 명백히 「가입보류」를 약속한 것은 아니므로 여전히 불안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김일성은 이번 방중에서 이같은 정치적 도움과 함께 경제적 협조를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현재 극심한 외환부족으로 30억달러에 달하는 차관을 갚지 못해 서방국가들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으며 매년 1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누적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소련이 내년 1월부터 원유등의 대금을 달러등 경화로 지불토록 최근 북한측에 통보한데다 수출가격도 종전에 사회주의국가들에 적용하던 할인제도를 폐지,국제시세대로 받기로 함에 따라 경제압박을 더욱 느끼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이번 방중에서 중국측에 원유등 경제적 지원을 긴급 요청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김이 이번 중국 방문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최근 중국정세로 볼 때 김이 강택민 공산당 총서기 뿐 아니라 등소평 양상곤 이붕 등 실세들을 모두 만나야만 중국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은 그러나 등소평의 건강상 이유등을 들어 심양에서의 등김 대좌를 피하는등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이번 김의 방중이 한중 관계개선이나 북한의 변화여건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정광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