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하오 2시5분전.1백51회 정기국회 개회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단한번이었다.
고장난 시계태엽처럼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던 안내방송이 한번으로 끝난 게 이채로웠다.
국회 본회의장 중앙통로와 동쪽으로 의원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평민당 의석쪽의 서쪽에 서있던 사무처요원들은 물끄러미 다른쪽 입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민자당의원들은 그렇고 그런 인사만 나눈 뒤 재빨리 착석을 서둘렀다. 여기 저기서 큰 소리로 인사를 주고받던 여느 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준규국회의장이 개회사를 낭독했다. 평소 카랑카랑하던 그의 목소리가 엉겨들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굳이 들으려하는 의원도 없었다. 15분 만에 개회식이 끝나자 여당의원들은 텅빈 야당 의석쪽으로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썰물처럼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국회직원들이 가지런히 놓았던 야당 의석위의 참고자료들을 모두 걷어갔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본회의장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이날 국회는 「반쪽국회」도 되지못한 「제로국회」였다.
여당의원들의 정치목적은 야당의원들에게 「거대」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밖에 없었고,야당의원들은 여당 의원들에게 승리하는 길만을 찾은 결과가 썰렁한 「제로국회」로 나타난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26개 민생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으며 무엇을 위해서 국민들이 붙여준 금배지를 떼어버렸는가를 여야에게 함께 묻고 싶은 것이다.
정국운영에 일차적 책임있는 여당이 이같은 정치부재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책임있는 여당이라면 원인제거작업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야당 역시 『이것을 기화로…』하는 식의 정치계산은 버려야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국민에게 욕을 듣고 미움받는 국회는 그나마 살아있는 국회다.
시정잡배에게서나 볼 수 있는 욕설과 멱살잡이가 오가는 본회의장의 모습이 적막강산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제로국회」가 자칫하면 국민의 무관심속에 「잊혀진 국회」가 될까 걱정된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듯이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이 등원하여 살아있는 국회 모습을 되찾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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