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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위한 큰 정치/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 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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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위한 큰 정치/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 교수(정치진단)

입력
1990.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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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병적 권력동기 버려라남북총리간의 역사적 만남과 때를 같이하여 오랫동안 경색되었던 여야 대치정국이 해빙으로 접어들고 있다. 남과 북,그리고 우리쪽 여와 야간에 모처럼 화해분위기가 감도니,오랜 장마뒤에 구름사이로 한뼘 푸른 하늘을 보듯 모두가 한결 밝은 표정이다.

좀 역설적인 이야기같지만 여야가 서로 등을 돌렸던 지난 달포동안의 정치휴한기동안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치없이」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찌는 듯한 더위속에 불쾌지수가 끝없이 치솟을 때,여야가 진흙탕속에서 아귀다툼하는 꼴까지 보아야 했다면 아마 지난 여름은 견디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이 그들의 일상속에서 가까이 느껴야할 정치를 지겨워하고 아예 「정치로부터의 도피」를 꾀한다면 이건 정말 심상치 않은 일이다. 남북화해시대를 갈망하는 오늘의 시점에서,우리정치가 국민의 품속으로 회귀하기 위해서는 이제 뭔가 큰 변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생각에서 다시 대화를 여는 여야의 지도자들에게 충심으로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이제 통일을 생각하는 큰 정치를 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의 세가지요건은,민주주의의 「게임의 규칙」을 내면화할 것,정치의 권력동기를 민생동기로 바꿀 것,그리고 개혁정치의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다.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민주주의는 공존의 생활원리이다. 따라서 그것은 상대방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고 그와 더불어 문제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다. 관용과 타협을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으로 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수결원칙도 물리적인 수의 지배여서는 안되고 상호간의 설득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질적 차원의 합의과정이어야 한다. 소수자의 의견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야가 함께 정한 「게임의 규칙」은 그것이 절차에 관한 것이건 내용에 관한 것이건,어떤 일이 있어도 바르게 지켜져야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편의에 따라 합의한 규칙을 외면하고 그때 그때의 상황논리로 호도하게 되면,상호간의 불신의 벽이 높아져 적대적 감정이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정치적 교섭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존중의 합리적 대화정신과 합의를 이루기 위한 자기절제와 양보이다. 이제 통일을 생각하는 큰 정치마당에서 여야는 기존의 승부전략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상호공존의 합의전략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위의 주문은 남북대화에 임하는 양측대표들에게도 똑같이 권하고 싶은 당부이다.

아울러 여야의 정치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정치에 임하는 동기부터 바꾸라는 것이다. 그들,특히 주연급 몇몇 거물정치인들의 거의 병적인 권력동기가 민생동기로 전환되지 않는한,우리의 정치마당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없다. 그동안 한국정치는 언제나 벌거벗은 권력의 냄새를 강하게 내뿜었다.

제도권정치의 생리를 보면 어느 당이나 정파나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면서 그들이 실제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권력게임뿐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적어도 우선순위에서 권력동기가 민생동기에 항상 앞서 왔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어느 당이나 정책연구부서같은 「생각하는 장치」가 극히 취약하고 그나마 제구실을 못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의회에서도 정치인 자신들의 권력과 이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안이 제기되면 의회내에 토론문화는 여지없이 실종되고,자칫 극한 투쟁이 연출되기 일쑤이다. 「내각책임제」로부터 「선거구조정」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사안들이 하나같이 권력동기에 얽힌 정치의제들이라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통일을 생각하는 큰 정치를 생각하는 마당에 반쪽 땅에서 한줌 권력을 더 잡아보려고 탐욕스럽게 벌이는 그들의 거짓과 장난,술수와 위계를 이제 온 국민이 제 손바닥 펼쳐보듯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이제 아예 정치 꼴 안보는게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게 아닌가.

통일을 생각하는 큰 정치의 세번째 요건은 여야의 정치인들이 개혁정치의 실천을 통하여 우리 체제를 통일지향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남북한의 양체제는 그동안 양극화의 냉전구조속에서 서로 너무 오랫동안 역방향으로 달려갔다는 느낌이다. 그동안 남한이 성취한 자본주의적 성과나 북한이 내세우는 사회주의적 업적이나,전화로 초토화된 땅에서 일구어 놓은 노력의 결실이라고는 하지만,상호간의 체제특성은 너무나도 차이가 크고 각기 만만찮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남쪽은 어느정도의 자유를 구가하고 경제발전을 이룩했다고는 하지만 배분적 정의를 실천하지 못한 탓에 첨예한 내적 갈등을 안고 있고,북쪽은 바깥세상에 눈과 귀를 막고 자유의 억압속에서 하향적 평준화를 강요한 까닭에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갈 체제생존능력 자체가 약화되었다.

그런데 통일이라는게 무엇인가. 그것은 두개의 이질적 존재들이 자기변신을 통하여 함께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체제만이라도 통일된 한국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규범적 모형에 걸맞게 자기쇄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체제이념을 초월하여 인류모두가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들,즉 자유와 평등 그리고 복지를 지향하며,이 체제를 과감하게 개혁하는 일이다.

그 큰 물줄기는 무엇보다 우리체제의 가장 취약한 요소인 평등가치를 고양하는 일이다. 즉,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살리면서 국가의 적절한 개입으로 분배의 편중,독과점 및 시장경제의 취약한 구조적 제문제들을 합의에 의하여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재벌로비에 밀려 비업무용 부동산 판정기준이 하루아침에 바뀌어져서야 체제개혁은 고사하고 체제유지마저 어려울게 아닌가. 통일을 생각하는 개혁정치를 위하여는 여야정치인들 자신들부터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들을 하나하나 떨쳐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통일을 위한 준비는 우리들의 정치마당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여야정치인들의 이러한 각고의 노력없이 남북한간 대화의 실질적인 소득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체제쇄신에 앞서 이땅 정치인들의 의식쇄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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