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벌써 다가와 있다. 하늘과 들판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고 8일이면 가을기운이 완연히 스며든다는 백로이다. 여름의 모진 시련과 헛된 감정소비를 거쳐온 사람들에게 하늘은 보다 겸손해지고 차분해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이제 다행스러운 일들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긴 장마,일조량 부족으로 걱정스러웠던 올해 농사는 그뒤의 풍부한 햇볕 덕분에 풍년을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태풍이 어찌 될지,비가 얼마나 더 내릴지 걱정스럽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군의 날과 한글날을 올해부터 공휴일에서 제외했던 조치도 일단 백지화 됐다. 귀성표를 예매했다가 환불받은 사람들은 낭패한 표정이지만 여론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일단 무슨 조치나 명령이 내려지더라도 또 바뀔지 모르니 사흘은 두고봐야 한다는 「조선공사 사흘」의 우리나라 행정전통을 믿고 표도 무르지 않은채 버텨온 사람들의 식견은 보기좋게 적중했다.
또 2년가까이 끌어온 남북접촉이 결국 성사돼 4일부터 서울에서 남북총리회담이 열린다. 이 회담을 계기로 여야의 협조분위기도 조성돼 가고 있다. 사실 정치인들이 다투거나 말거나 구애받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하도 시끄럽게 떠들고 국민들을 성가시게 하는 사람들이니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기로 한다. 남북총리 회담에서 어떤 결실이 있다면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페르시아만 사태로 위기에 처했던 중동교민들도 무사히 귀국하고 있다. 귀국한 뒤에는 교민회를 조직해 정부에 생계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으나 우선 탈없이 살아 돌아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사할린 동포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처음 냈다. 해방 45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반드시 재판에서 이겨 조금이라도 한을 풀어야 할 것이다.
지난 8월23일 귀국했던 무연고 사할린 동포들이 속속 연고자를 만난 것 역시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가도 다시 오르고 있다. 나는 주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특히 시위나 농성도 하지 못한채 속앓이를 해온 주식실패자들을 위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축구선수 김주성이 배번을 바꾸더니 긴 머리까지 잘라버렸다. 그에게 기대를 걸던 사람들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욱 다행스러운 일은 여름내내 찧고 까불던 TV주말연속극 「배반의 장미」가 재방영절차까지 모두 끝난 것이다. 어떻게 종료됐는지 내용은 몰라도 정말 잘됐다. 참 다행스럽다.
이렇게 좋은 일들만 생각하며 가을을 맞도록 하자. 그리고 지난 일들에 대한 미련은 버리기로 하자. 여름의 피서지에서 숱하게 잡았던 잠자리들을 모두 도로 날려보내 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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