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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기다리지 않는다(이성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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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기다리지 않는다(이성춘칼럼)

입력
1990.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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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간의 계획 설계공사끝에 1975년 9월1일 준공된 여의도 현 국회의사당은 본래 남북통일과 양원제에 대비하여 지은 것이다.새 의사당이 문을 연 날의 일이다. 이날 박정희대통령은 국회의장ㆍ여야 지도자들과 나란히 테이프를 끊은 뒤 본회의장 상임위회의실 의장실 의원휴게실을 둘러보다 로텐더홀(중앙홀)에 이르렀을 때였다. 수입대리석으로 은은하게 꾸며진 바닥과 천장(돔)을 둘러 본 박대통령은 갑자기 『국민의 엄청난 혈세를 들여 이렇게 화려한 의사당을 지어줬는데도 계속 싸움질을 할거야!』하고 언성을 높였다. 느닷없는 질책에 여야수뇌들은 움찔했고 박대통령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의사당을 떠났다.

그로서는 유신선포를 계기로 비민주적 개헌을 통해 국회의 권능을 대폭 삭제했음에도 야당이 사사건건 대 정부비판을 하고 유정회까지 가세된,힘으로 누르려는 여당과 격돌,걸핏하면 정국이 교착된데 대해 불편했던 심기를 폭발한 것으로 풀이됐다. 즉 공격적인 야당에 겁을 주고 원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갖고도 쩔쩔매는 여당간부들에게 기합을 준 것이다. 아무튼 박대통령의 「싸움질」 일갈은 오랫동안 의원들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사실 국회에서의 여야간의 건전한 싸움질­민주적방식에 의한 싸움질,국민과 국가를 위한 생산적 싸움질은 언제든지 당연히 있어야 한다. 어느나라 국회이건 이러한 싸움질이 없는 국회는 죽은 국회나 다름이 없다.

여야지도자ㆍ국회의원간의 정략과 당리사리를 겨냥한 싸움이 문제이다. 까놓고 말하면 우리국회 우리정치의 문제와 고질병은 예나 이제나 바로 이같은 잘못된 싸움질에 있는 것이다.

5공시절인 82년 4월 당시 조지ㆍ부시 미 부통령이 내한,국회본회의에서 연설도중 「떠들썩한 민주주의」를 강조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민주적 의회­입법부는 늘 소란해야 한다. 미국의회도 늘 소란스럽지만 우리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결코 바꿀 생각이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국회는 또한 떠들썩해야 한다. 국민과 국가이익을 대변,신장한다는 의미에서 국정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제기되어 활발하게 찬반토론이 빚어져야 한다.

국회가 떠들썩하게 운영되려면 필요할 때,국민의 요구가 있을때는 언제든지 열려야 한다. 따지고 보면 잘사는 나라,선진민주국가의 국회치고 조용한 국회가 없다. 영국과 미국국민들이 테임즈강변에 임립한 의사당과 워싱턴의 캐피터힐(미국의사당)에 밤새 불이 켜져 있을 때 국민들은 정치를 잊고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또 편안히 잠을 잔다는 얘기는 우리에겐 부럽기만 하다.

그런데 우리국회와 정치는 어떠한가. 한번 잠이들면 깨어날 줄 모른다. 여야가 한바탕 격돌해서 파행 교착상태가 되면 얄팍한 체면과 이해때문에 좀처럼 풀줄을 모른다. 임박한 중동전운으로 석유파동의 여파가 벌써 우리경제를 흔들기 시작하고 전체 농정에 충격을 줄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시한이 한걸음씩 다가오고 물가가 뛰고 증시가 쑥밭이 되고 정부가 팽창예산을 짜고 있는데도 정치지도자들은 「나몰라」다. 이판에 국민들의 속만 바싹바싹 타고 있는 것이다.

아무려나 정치ㆍ국회를 정상화시키라고 국민이 외치다가 목이 쉬고 또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난국타개에 참여할 뜻을 밝힌 것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당초 국회해산과 14대총선,내각제개헌 포기,지방자치제 실시를 절대조건으로 내세우고 야당의원들의 의원직 사퇴서를 던지게 했던 그가 국회복귀에 어느 정도 조건을 완화할 것인지 정확한 의중은 아직 모른다. 그러나 회견에서 『이제 하한기는 끝났다』고 선언하고 난국타개에 참여를 비친 것으로 보아 정부ㆍ여당의 상응하는 조치를 기다리는게 분명하다.

이 정도 운을 떼었으면 이젠 여당이 적극적으로 호응할 차례다. 정기국회가 임박하고 또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원성과 지탄이 드높아지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오겠다는 몸짓으로 봐서는 큰 잘못이다. 여당은 국민과 야당에 정국수습안을 차례로 펼쳐야 한다. 우선 야당의 사퇴서를 즉각 반려한 뒤 지난 임시국회에서 이유야 어떻든 26개 의안을 날치기 처리한데 대해 국민에게 머리숙여 사과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현안에 대해 찔끔찔끔식으로 비칠 것이 아니라 여당의 복안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지자제의 실시일정과 정당공천의 범위를 협상과 법안심의 이전에 밝혀야 한다. 이와 함께 국가보안법을 2천년대까지 국가발전과 국제적 변화를 예상하는 차원에서 국익에 맞게 전향적으로 고치는 안도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야당과 석유파동여파ㆍ우루과이라운드ㆍ경제회복대책등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국회의원수를 늘리는 선거법개정은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것으로서 순서를 뒤로 미뤄야한다. 곁들여 정부ㆍ여당은 난국을 함께 타개해 나간다는 뜻에서 모든 국정정보를 수시로 야당에 알려줄 의무가 있다.

야당도 시급히 할 일이 있다. 김대중총재의 등원시사는 고무적인 일이지만 국민들로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여당에 물리적으로 어떤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제1야당답지 않은 부질없는 일이다. 되풀이 말하거니와 오늘 당장 무조건 원내복귀를 선언하기를 국민은 고대하고 있다. 비록 1주일후면 정기국회가 자동개회되지만 남북총리회담이 끝난 다음날부터라도 관련국회상위를 요청하여 중요현안을 밤을 새워 논의하고 추궁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앞으로는 두번다시 국회를 등지지 말고 내각제도 지자제도 국가보안법도 국정감사도 적극 거론하고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에게 건전하고 생산적인 「떠들썩한 싸움질」과 야당의 새 모습을 잇달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정치지도자들도 새로운 시국관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국민보다못한 시국인식을 고집한다면 그때는 지도자들은 한낱 국회의원의 자격도 없다 하겠다. 국민은 언제나 기다리지만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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