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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모범이 되자/정일화 북한부장(남북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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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모범이 되자/정일화 북한부장(남북회랑)

입력
1990.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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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회담은 「화약고」역 종식의 호기캐더린ㆍ크로난여사(미국인ㆍ62)는 한국전 참전중 압록강 상공에서 산화한 미 공군 소위 리처드ㆍ크로난의 아내로 현재 캘리포니아의 「한국전 기념협회」를 이끌고 있다.

6ㆍ25관계자료를 주고받으면서 알게 된 이 미국인은 한국의 남북관계가 조그마한 진전이라도 보일 듯하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며 긴 팩스 서신을 보내오곤 한다.

리처드ㆍ크로난소위는 신학교 6년과정을 마치고 곧 신부가 될 예정이었으나 신부 대신 조종사가 돼 자유를 지키러 한국전에 뛰어들었었다.

크로난소위가 수원 주둔중 영등포거리를 한번 돌아본 후 그의 사랑하는 신부 캐더린에겨 보낸 편지는 전쟁에 대한 혐오감,한국인에 대한 동정심같은 것으로 꽉 채워져 있다.

『오늘 영등포로 나와봤습니다. 길이란 길은 온통 진창이고 집은 폭격ㆍ포격으로 다 쓰려졌으며 기둥이 서있는 집치고 유리창 하나가 성한 집이 없습니다. 전쟁이 한국땅을 이리저리 휘저어놓은 결과는 너무나 비참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잃은 채 먹을 것도 없이 방황하고 있고… 내일 북으로 출격할 예정입니다…(수원비행장에서)』

크로난소위가 1951년 12월12일 전사한 후 간호원이던 캐더린ㆍ크로난도 곧 공군에 간호장교로 지원해 한국전선 파견을 신청했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 파견되는 대신 미 본토로 후송되는 미군 부상조종사들을 돌보며 한국전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일생을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살아오고 있는 그녀는 한국에 대해 두가지 소망을 걸어왔다고 했다. 하나는 남편이 이 지역의 자유를 위해 뿌린 피가 결코 헛되지 않게 될 것과,둘째는 살아 생전 남편의 전사지를 방문해 한번 목놓아 울어보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교류의 획기적 기반이 될 남북 총리회담이 4일 열리게 된다. 깊은 애증를 갖고 남북 고위급회담을 지켜볼 해외의 눈은 절대로 캐더린ㆍ크로난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전을 통해 중공군 90만,미군 3만5천,영국군 터키군 그리스군 태국군 호주군 등 연합군 2만명이 이땅에 생명을 바쳤었다.

국가의 이해관계 측면에서는 그만두고라도 크로난여사처럼 개인적인 면에 얽혀 이번 남북 총리회담을 지켜보는 세계의 이목이 적지않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45년간의 적대관계를 딛고 처음 열리는 이 남북 고위급회담은 한민족의 슬기를 보여주는 역사의 장으로 기록할 수 있게 할 것인가,아니면 국제간섭을 받아야 마땅한 민족,고위한 피를 바칠 만한 가치가 없는 민족으로 평가될 것인가의 여부가 달려있는 것이어서 그 귀추가 주목되는 바 크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적어도 조선말 개화이래 외세영향력이 가장 적은 때라고 할 수 있다. 주변국들은 대한반도 영향력 심기를 경쟁하기 보다는 『이제 당신들 스스로가 스스로의 문제를 속히 해결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입장이다.

북한 김일성주석은 일본이 한반도통일을 내심 가장 싫어하고 있다고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절대로 그렇게 볼 이유는 없다.

미ㆍ일ㆍ소ㆍ중 등 한반도 주변국은 모두 이 지역의 긴장완화,평화적 통일을 공식적으로 지지해 왔으며 때문에 이를 거꾸로 뒤집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여건속에서 남북 총리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두개의 민족비극을 역사의 장에 넘겨버릴 필요가 있다.

일제 36년의 식민지통치와 6ㆍ25전쟁이다.

해방후 좌우익 대립이 그렇게 무자비했고,악질적이었던 것은 확실히 일제 36년동안 일인 식민주의자들에게 당한 모진 박해의 반동인 면이 컸다.

「왜놈」들을 미워하고 미워한 나머지 결국 그 미움의 불똥이 동족에게까지 번지게 됐으며,이것이 6ㆍ25전쟁의 참화로 이어지면서 남과 북은 극한대립자로 변해버렸다.

「누가 일제의 앞잡이였는가」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라는 말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피를 거꾸로 돌게 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사건들을 역사에 묻어버리고 그 교훈만을 가질 때다. 사실 식민통치ㆍ이데올로기,이런 것들이 가져온 이땅의 비극들은 민족의 어리석음 때문에 가중된 면이 크다. 새삼 제국주의가 어떻고,이데올로기가 어떻고 라고 꽁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남북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지금까지는 한반도가 국제전의 불씨가 됐고,이웃나라의 귀한 인명을 앗는 땅이 됐었지만 지금부터는 이웃에게 평화를 주는 나라,도움을 주는 나라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소명감으로 이 역사적 회담을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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