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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보존하세”/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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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보존하세”/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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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사회부에는 영구보존철이라는 스크랩 북이 있다. 「기자들의 실수모음집」이라고 할만한 이 스크랩 북이 언제부터 만들어 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벌써 10여권이 넘은 상태다.스크랩 북에 수록된 기자들의 기사 초고를 훑어보면 재미있다.

예를 들면 「대도시 교통난을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기 위해」,「강원 폭설지역에 대한 복구지역을 벌이고 있는」,「외부인의 통제도 일체 금지됐다」,「올들어 훼손된 그린벨트 훼손사범」따위의 표현은 급한 마음에서 빚어진 실수 일 것이다.

「산업재해 유공자」,지배 이데올로기를 줄여 신조어를 만들어 버린 「지배올로기」,「부채가 늘어 비관자살 해왔다」는 기사도 있다. 또 「동해안의 어획이 부진한 이유는 물고기들이 말라 그물사이를 쏙쏙 빠져나가기 때문」이라는 명기사가 보는 사람을 폭소하게 만든다.

스크랩 북에 「입건」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기사로는 「벙어리 김××씨가 신병과 생활고를 비관,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는 평소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말해왔다」는 것이 있다.

15년쯤전에 씌어진 기사로 연쇄살인범을 잡지 못해 궁지에 몰린 서울시경 국장이 『오늘중으로 꼭 잡겠다』고 말했다는 코멘트도 영구보존돼 있다.

누구나 범하기 쉬운 실수를 모은 이 영구보존철은 기자들의 자경문이자 견습기자 교육용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런 영구보존의 관점에서 보면 내무부장관의 지난 6월14일 지시는 「오늘중 잡겠다」계열의 딱 떨어지는 영구보존감이다. 안응모장관은 그날 소집된 전국 경찰서장회의에서 『조직폭력 강ㆍ절도 인신매매사범의 예방과 검거에 총력을 기울여 연말까지 확립키로 한 민생치안을 8월말까지 앞당겨 정착시키라』고 강력히 지시했다. 안장관은 이를 위해서 7월1일부터 8월말까지 대학가의 시위진압 병력을 포함한 전국 경찰력을 총동원,범죄로부터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8월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지금 민생치안이 앞당겨 정착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하룻밤새 3군데를 팔려다닌 여중생,야구장의 집단난동,신고자 보복범죄 등 민생을 위협하는 범죄는 더 극성을 부리는 추세다.

당초부터 되지도 않을 일을 왜 시한을 못박아 지시했는지 모를 일이다. 마감시간에 쫓긴 기자들처럼 장관도 초조했기 때문인 것일까. 전임 치안본부장도 『민생치안을 확보하지 못하면 옷을 벗겠다』고 자주 말하더니 부하들의 옷만 잔뜩 벗겨놓고 자신은 영전돼 갔다.

그런 장담이나 약속을 하지 않고 착실하고 꾸준하게 일을 해나간다면 오히려 국민들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공인의 공허한 말이나 다짐은 국민들의 기억속에 영구보존돼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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