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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길선생님 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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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길선생님 영전에

입력
1990.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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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아침보도가 한동안 저를 멍청하게 했습니다.선생님을 마지막 뵌 것이 7월이었던지요. 고사리마을을 찾았을 때,그때 벌써 저는 절망했습니다. 마루 유리창안에 서 계신 선생님을 뜰에서 바라본 저는 순간 간디를 연상했습니다. 모자를 쓰시고 안경을 쓰시고 지팡이를 드신 선생님 모습은 간디같았습니다.

제가 고사리마을에 가기 며칠전,선생님은 서울서 내려오시는 길에 제 집에 들르셨습니다.

잔디밭에 음식을 펴놓고 선생님은 맛나게 김밥을 드셨습니다. 김밥을 맛나게 드신 그 일만이 저에게는 희망이었습니다. 괜찮으실거야,회복하실거야 하면서도 그날의 충격은 너무나 컸습니다.

고사리마을에서는 일종의 체념같은 것이었습니다. 나으시면 함께 프랑스로 여행하자는 말씀을 드렸을 때 선생님은 유쾌하게 웃으시면서 그러자고 하셨습니다.

선생님,태산같이 기대고 살아온 저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선생님은 크나큰 사랑을 주시기만 하시고 제가 보답한 것은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지금 통곡하는 심정에서도 나는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뿐이니 용서하소서.

생각해보면 이십년 가까운 세월,선생님은 언니같으시고 선생님댁은 저에게 있어 친정같았습니다. 김지하가 체포되고 갓 태어난 아이와 우리 모녀가 정릉 골짜기에서 사고무친ㆍ고립무원의 상태였을 때 아이의 옷 한아름을 안고 오신 선생님,아이 기죽이지 말라 하시며 서울근교 백화점 식당,안간 곳 없이 데리고 다니신 선생님,보일러 동파로 아파트를 전세내여 피신했을 때 바쁜 장관생활속에서도 알리지 않았다고 나무라시며 찾아오신 선생님,어찌 그 많은 사연을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급한 일만 있으면 봉원동 선생님댁에 뛰어가곤 했는데 이제 저는 어디로 뛰어가야 합니까. 항상 우리 주변에 있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공기가 없어진 뒤 숨가빠하듯 선생님! 저는 숨이 가쁩니다. 오직 회한으로 숨이 가쁩니다.

원주에 와서 그 알량한 소설 쓴답시고 고사리마을엔 일년에 한번 가기도 어려웠고 어떤 때는 이삼년을 넘긴 저 자신,원고만 끝나면 그때는,하고 선생님을 천년만년 사실거로 알았나 봅니다. 가끔 서울서 오시는 길에 들르시면 누가 가져갈 게 뭐 있냐며 걸어 잠그고 고사리마을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일찍 많은 회한을 남겨놓고 가셨습니다. 병원에서도 선생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웃으셨습니다.

우리집 뜰에서 김밥 드시고 차에 오르실 때도 웃으셨고 고사리마을에서 마지막 헤어질 때,서울 가는 지름길을 자상하게 설명해주셨고 우리에게 손 흔드시며 웃으셨읍니다. 마지막까지 웃으셨읍니다. 당신은 확실히 거인이 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즐겨 신으시던 하얀 남자고무신 한귀퉁이를 뚫어 빨간 리본으로 묶어서 자기 신발인 것을 표시하실 만큼 섬세했습니다.

이른 아침 새소리가 창가에서 들려옵니다. 편안한 배를 탄 듯한 선생님의 분위기를 어디 가서 느낄 수 있을까요. 평생 남에게 베푸시기만 하시더니 훌훌 모든 것 다 떨쳐버리고 홀로 가셨습니다.

고사리마을에 갔을 때 제가 지은 실크 웃도리를 찬바람 불면 숲에 나가실 때 입으시라고 가져갔었는데 그것,입지못하셨겠네요. 전에 한벌 드린 것을 낡을 때까지 편해서 입으셨다고 하셨는데 왜 이번에는 그 옷 낡을 때까지 사시지 못하셨습니까. 이해만이라도 이 가을만이라도 기다렸다가 그 옷 입으시고 숲속을 산책하셨더라면… 원망스럽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부디 고이 잠드소서.<박경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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