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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 공해/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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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 공해/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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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할말이 많은 백성들인 것일까. 서울이든 지방도시이든 거리와 골목마다 각종 주장과 선동,계몽과 광고 플래카드가 안 걸린 곳이 없다.가장 많은 것은 역시 각급 행정기관의 계몽구호. 「너도나도 마약신고 사천만이 마약감시」「놀때는 조용하게 갈때는 흔적없이」「지력은 국력 우리모두 퇴비증산」「환경은 우리생명 보호는 우리사명」「우리고장 애향담배 지방재정 살찌운다」「안전띠를 맵시다」「너와 나의 신고정신 사회안정 나라발전」 따위가 쉽게 눈에 띄곤 한다. 우리는 이처럼 해야할 일이 수도없이 많은 국민이다.

그래도 계몽 플래카드는 행정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선동,비난 위주이거나 전혀 공공성이 없는 개인선전은 보기가 괴롭다. 「통독도 하는데 집안싸움 왠말이냐」고 맞춤법도 틀리게 큰 글씨로 써놓은 무신경,「국회해산 선동하는 간첩의원 색출하라」고 아예 간첩으로 몰아버린 용감성에는 기가 질리게 된다. 「부모님들 죽어간다 남북교류! 자유왕래!」라는 플래카드의 「죽어간다」는 말은 오히려 효심을 의심하게 한다.

가장 가관인 것은 거리를 개인게시판으로 착각하는 국회의원,정치지망생들의 플래카드다. 「경축」이라고 좌우 양쪽에 크게 써놓고는 「×××의원 ×번째 저서 출판기념회」나 「×××의원 사무실 이전」 등을 선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로준공,지하철 착공 등이 순전히 자기공인양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음 선거를 노리는 13대 총선 낙선자들은 「즐거운 피서길 안녕히 다녀오십시오」식으로 4계절 내내 유권자들에게 인사장을 보내고 있다. 얼마전에는 「지난번 사무실 화재로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별로 심려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굳이 인사를 닦은 낙선자까지 있었다.

게다가 주부사원 모집,빌라분양,학원광고까지 끼어들어 시각공해는 가중된다. 플래카드 공해는 87년의 대통령선거 때부터 부쩍 심해진 것으로 행정기관의 단속차원을 이미 넘어선 상태이다. 관할구청이나 시청에선 신고를 받아 공공목적에 맞는 것만 1주일 단위로 설치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으나 지금 길거리에 내걸린 것중 정식 절차를 밟은 플래카드가 얼마나 되겠는가.

불법설치한 경우라도 내용이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맞춤법이 틀린 채 행사날짜와 시기가 지났는데도 그대로 두어 너덜거리는 흉물이 너무 많다. 요즘 걸려있는 플래카드의 문안대로 「말로만 질서말고 행동으로 실천하자」는 말을 들려주고 싶을 지경이다.

우리는 저마다 입을 열어 남을 설득하고 목청높여 외치려할 뿐 들어주는 입장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갈수록 보다 자극적인 문구와 강렬한 빨간색을 남용하고 있다. 강렬한 주장일수록 그 바탕은 공허하고 빨강은 다른 색보다 더 일찍 빛이 바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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