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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씨에게 촉구한다(이성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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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씨에게 촉구한다(이성춘칼럼)

입력
1990.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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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필자는 캔버라에 있는 호주의 국회의사당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복도를 걸을 때는 삐그덕 소리가 날 정도로 2차대전전에 지은 백색의 3∼4층짜리 아담한 건물이었다. 역시 선진 민주주의 의회에 걸맞게 본회의와 상임위의회의 분위기는 마치 학술세미나장과도 같은 진지성과 열기로 가득했다. 방청이 끝난 뒤 약속대로 의장실을 방문했다.의장은 1년전 국회초청으로 방한 했었다며 『여의도 의사당의 웅대함에 감탄했습니다. 동양 최대규모라는 한국의 의사당에 비하면 우리의 것은 너무도 초라하지요』라고 한껏 건물 칭찬을 했다. 그런데 핵심은 다음에 털어놨다.

『그처럼 훌륭한 의사당을 여는 날보다 문닫는 날이 더 많고 또 국회가 열리기만 하면 여당은 힘으로 마음대로 운영하고 또 야당은 극심한 저항을 벌이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용납합니까? 그렇게 하고도 의원들이 국민의 표를 얻을 수 있다는게 신기하군요…』 필자는 창피한 생각에 대충 인터뷰를 끝내고 자리를 일어섰다.

새 의사당에 입주한지 15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국회운영 정치의 모습은 하나도 달라진게 없다. 15년 정도가 아니라 20년전이나 30년전이나 여전한 모습이다. 다수 여당의 전횡­소수 야당의 결사투쟁­날치기 운영­극한 대립 또는 의원직 사퇴서 제출­정국경색의 악순환이다. 건물만 웅장하고 분수에 넘치는 호화판 시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올 예산만도 무려 8백50여억이나 되는,동양 최대규모의 의사당에서 만들어내는 정치의 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동양 최저질의 불량품뿐이다.

거여가 26개 의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야당이 이에 반발,사퇴서를 제출한지 2개월이 지난 오늘날 의사당은 폐가가 됐고 정치는 완전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우리의 주변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긴박한 중동전운과 이에 따른 석유파동 조짐,모든 농가의 숨통을 죄게될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진행,배추 한포기 값이 수천원이나 되는 물가앙등으로 서민들이 발을 구르는데도 정치인­지도자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장외에서 말싸움 인기관리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 뿐이랴. 지금까지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성역이라고 여겨왔던 국회의 의사처리의 위헌여부를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서 가리게 됐는데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느끼는 것이지만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오늘날 우리의 국회와 정치가 이 지경으로 전락,파탄이 된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는 일부 여야 지도자들의 지나친 대권의식과 이에 따른 아집과 독존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론 지도자들의 대국적 경륜과 철학의 결여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위국위민이 아닌 당리와 개인의 기득권확보에만 연연하는한 이나라 정치가 올바로 설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 지도자들이 언제나 이기는 정치,외양적인 껍데기정치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국민의 눈을 속일 수 있다는 기만성과 허위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고질병들이 우리의 정치를 얼마나 멍들게 하고 또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실망감과 불쾌감을 안겨주는가는 매일 매일 똑똑히 볼 수 있다. 거여의 경우 합당을 선언한지 6개월이 지나면서 당초 내걸었던 새 정치에 대한 약속은 찾을 길 없는데다 정부에 대한 1차적 견제와 감독은 외면한 채 3계파가 부질없이 사소한 일에까지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김영삼 대표와 김종필 최고위원간의 경쟁과 불화설도 그렇고 박철언 의원이 「제2의 정계개편」 운운했다가 하룻만에 와전이라고 언론에 뒤집어 씌우는 것 역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야당쪽도 마찬가지다. 최후의 카드라며 사퇴서를 던진 뒤 벌이고 있는 야당통합협상은 스스로가 배격하겠다는 구태의 재판이다. 누가 당수가 되고 어느 쪽이 조직책을 얼마나 차지하는 것보다 참다운 수권야당을 만들겠다는 공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신당의 당권장악에 대한 사심이 요지부동이니 국민에게 약속했던 통합이 제대로 될리가 없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일그러진 정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살리고 국가적 난국에 대처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여야에게 간곡히 촉구하고자 한다. 먼저 민자당은 거여다운 구실을 다해 달라는 것이다. 큰 정치를 펴는 일은 물론 위로는 총재에서 지구당의 말단 간부들까지 발벗고 나서 각계 각층과 대화를 나누고 국민속에 뛰어들어 불만과 요구와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서 하나하나 국정에 반영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화한답시고 민자당 간부와 의원들끼리 어울리고 홍보책자를 수십만부 뿌린다고 국민과 일체감이 이뤄지지는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올 연말까지는 약속한 대로 내각제 개헌얘기는 일체 꺼내지 말라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민생이 이 지경이고 국제정세의 파고가 험난한데 무슨 부질없는 한가한 개헌론인가. 이와 함께 지방자치제 실시에 대한 확고한 의지표명과 함께 국민과 야당의 의견을 수렴한 새로운 안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끝으로 국회의장은 즉각 야당의원들의 사퇴서를 반려해야 한다. 무엇때문에 두달씩이나 움켜쥐고 있는 것인가.

야당에 대한 주문은 분명하다. 조건없이 즉각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복귀선언과 함께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해야 한다.

20일 후면 정기국회가 자동으로 열리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야당이 먼저 선수를 쳐서 임시국회를 열자고 하여 석유파동과 이에 따른 물가앙등ㆍ수출부진ㆍ경기침체ㆍ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른 농가보호대책ㆍ남북대화 등을 논의해야 한다. 물론 지방자치제 문제도 매듭을 지어야 한다. 국회해산등 몇가지 요구를 받아 주지 않으면 절대로 안들어 가겠다고 했지만 정치에 절대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태도와 소신을 바꿔도 괜찮다. 「반전의 정치」는 나날이 걱정속에 지내는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또한 김대중 총재는 하루빨리 노태우 대통령과 만나 당면문제를 기탄없이 논의해야 한다.

오늘날 대다수 국민들은 완전히 좌초된 정치를 걱정하면서 정치지도자인 3김씨의 대국적인 결단을 고대하고 있다. 대국적 결단은 우리정치의 고질병인 대권욕심ㆍ당권욕심 등 사심을 버리는 것이다. 사심을 버리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의 지름길이다. 3김씨는 국민이 언제까지 우리의 정치가 그들의 경쟁과 감정때문에 일그러지는 것을 묵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나라안팎의 상황은 지도자들이 「고십정치」「신경전 정치」와 인기관리에 몰두할 수 있는 한가한 형편이 아니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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