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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ㆍ조작과 무죄(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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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ㆍ조작과 무죄(사설)

입력
1990.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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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 조작 및 은폐사건에 대한 서울고법의 무죄판결은 얼핏 국민의 상식과 법관념에 의외라는 생각을 갖게 하며 사법부의 처신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 적지않은 것 같다.서울고법 형사 1부는 이 사건과 관련,직무유기및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전 치안본부장 강민창피고인에 1심의 유죄판결(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과는 반대로 무죄를 선고하고 역시 범인도피죄로 기소된 전 경찰간부 박처원피고인 등 4명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유무죄를 가리는 판결은 어디까지나 엄격한 증거주의 채택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결과만 가지고 섣불리 국외자로서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또한 1심인 서울형사지법이 비록 유죄로 인정했다 하더라도 2심 심리과정에서 증인,참고인의 진술내용의 변화,피고인의 새로운 주장에 따라 항소심 판결은 다른 판단을 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5공」의 조종을 울리게 한 계기를 마련한 박군 고문치사 축소 은폐사건은 앞으로 최종심인 대법원이 법률적용,해석의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 줄 것이기 때문에 당장 유무죄의 당부를 놓고 시비할 처지는 아니다.

하나 2심 판결문 요지를 살펴보면 강민창피고인에 대한 직무유기및 직권남용에 대해 『직무유기죄는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을 가지고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날 때 성립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강피고인이 사건당시 경찰총수로서 박군의 사망사실을 보고받은 직후 부하직원들에게 내린 일련의 조치들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직무를 소홀히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박처원피고인 등 3명에 대해서도 『가혹행위의 경관 5명중 3명을 은닉 도피시켰다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당시 상황을 살펴볼 때 피고인들이 경황중에 부하를 잘못 단속한 점과 직무를 소홀히한 점은 인정되나 범인들을 은닉 도피시킬 범의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역시 밝혔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고법의 판시대로 형사소송법상 무죄로 인정할 경우 범죄가 안되거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외에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 같은 사안을 놓고 1심과 항소심의 판결이 정반대로 엇갈린 데 대한 석명이 부족할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공익을 대표한 검찰이 이렇게 중요한 인권침해사건의 공소를 제기하면서 왜 철저한 수사와 증거보강을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는 박군 고문치사사건 수사당시 검찰이 같은 사건을 세번씩이나 반복 수사하면서 새로운 진상규명보다는 사건의 비화를 막는 데 주력했다는 인상을 받은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따라서 검찰이 사건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려 들지 않고 세간에 알려진 1억원 수표흥정설등을 미봉책으로 덮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의문시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로 민주화시대에 걸맞는 고문척결에 대한 공권력의 의지가 약화 안되기를 강력히 바라며 대법원의 최종심 판결을 주목하고자 한다.

아울러 법원의 엄격한 증거주의 채택이 경찰 고위간부들이 관련된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형사사건,특히 시국,공안 등 사건의 재판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사법부가 「5공」때처럼 어떤 외압을 받아 재판한다고는 믿고싶지 않기 때문에 모든 형사사건에는 공정한 수사가 뒤따라야 하며 모든 형사재판에 엄격한 증거주의가 채택되어 일편의 부끄럼이 없는 판결이 내려지도록 거듭 강조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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