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전쟁”… 수업 전 이미 파김치/강의 몰아치기… 질은 뒷전/7만 학생… 70%가 서울인대학의 제2캠퍼스시대가 열린지 12년. 대학의 눈부신 외형적 팽창과 질적개선 노력속에서도 제2캠퍼스는 아직 「분교시대」수준을 벗어나지 못한채 갖가지 난제와 씨름하고 있다.
열악한 학내외적 교육환경,교수진과 연구시설의 절대부족,서울캠퍼스와의 이질감과 예속적 교육풍토속에 7만 제2캠퍼스학생은 극심한 통학난 주거난에 시달리고 있다.
황량한 대학촌,지역사회와의 단절,사회적 편견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지방캠퍼스의 실상을 대학과 학생의 힘만으로 쉽게 호전시킬수는 없게 되었다.
수도권 인구분산과 지역간의 교육형평을 위해 급격히 확산된 제2캠퍼스의 현주소를 심층 취재,문제점을 진단한다.【편집자주】
외국어대 용인캠퍼스에 다니는 정면근군(22ㆍ폴란드어3)은 아침마다 학교갈 걱정이 태산같다. 안양에 사는 정군은 새벽6시에 일어나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2시간30분걸려 등교한다.
그나마 성남에서 학교까지 가는 스쿨버스를 놓치게 되면 3시간이상은 예사이고 학교앞 마을에서 내려 교문까지 30분을 뛰어야 한다.
정군뿐만이 아니다. 지방캠퍼스학생중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원거리통학생들은 아침마다 겪는 통학전쟁으로 수업도 받기전에 파김치가 된다. 지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사실상 한꺼번에 1주일치수업을 몰아치우는 3∼4시간짜리 「줄강의」. 졸음쫓기에 수업은 뒷전일수밖에 없다.
지방캠퍼스 학생을 제일괴롭히는 것은 통학난과 주거난이다. 교육의 질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시설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가장큰 문제점이다.
이는 대부분의 지방캠퍼스가 아무런 대책이나 계획도 없이 황량한 벌판에 강의실건물만 덩그렇게 세워놓고 학생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좁은문탓에 정원미달의 염려는 없으니 『학생들이 알아서 다니라』는 식이다.
79년 단국대(천안) 동국대(경주) 성균관대(수원) 연세대(원주) 중앙대(안성) 한양대(반월) 외국어대(용인)를 시작으로 건국대(충주ㆍ80년) 경희대(용인ㆍ 〃 ) 고려대(조치원ㆍ 〃 ) 상명여대(천안ㆍ85년) 홍익대(조치원ㆍ89년) 등 12개 서울소재 대학이 수도권과 중부일원에 지방캠퍼스를 설립했다.
대학본부를 용인과 수원으로 옮겨 서울캠퍼스가 오히려 분교형태처럼 된 명지대와 경기대도 같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지방캠퍼스 전체의 입학정원은 서울캠퍼스 2만7천여명의 66.5%에 해당하는 1만8천여명이고 전체학생수는 7만여명에 달한다.
이중 서울출신이 70%가량을 상회하며 원거리통학생은 수도권 캠퍼스의 경우 대략 전학생수의 40%에서 80%까지 차지하고 있다. 상오6시만 되면 서울의 고속ㆍ시외버스터미널,역주변에는 지방등교생 수만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학교마다 20∼40대의 스쿨버스로 정원의 2∼3배까지 실어 나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1월부터 시외버스의 학생할인제가 폐지돼 1인당 교통비는 월6만∼10만원까지 들어 콩나물시루속에 시달리면서도 학생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학교측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통학버스를 운영하는 민간업자들은 수지타산을 이유로 평일 하오6시이후와 공휴일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
통학난이 심각해 첫강의에 빠지는 학생들이 많자 대부분 지방캠퍼스는 1교시를 상오10∼10시30분에 개강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학기초 1주일중 2∼3일에 집중적으로 수강신청하는 경향이 있어 강의선택폭에 본의아닌 제약을 받기도 한다.
교직원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교수들은 3∼4시간짜리 「줄강의」에 의존,강의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따라서 통학난은 지방캠퍼스 학내분규의 단골메뉴이며 학생회장에 출마하는 학생들의 첫번째 공약으로 등장했다. 명지대 용인본부캠퍼스 총학생회간부들은 지난달 24일부터 9일간 「완전한 교통문제해결을 위한 총장실점거농성」을 했다. 「용인가는 길 지옥가는 길」 「총장님도 타보세요」라고 적힌 구호는 통학난에 지친 이들의 심정을 잘 말해준다.
◎식사는 구내식당… 잠은 도서관/기숙사 입주ㆍ하숙 구하기 바늘구멍/자취방도 한학기 35만원/가끔 집단행동 주민과 마찰/벌판에 강의실… 낭만 없어
장거리통학에 지친 학생들은 학교주변에서 하숙ㆍ자취를 하고 있으나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그나마 방구하기가 힘들어 고통을 겪기는 마찬가지이다.
중앙대안성캠퍼스에서는 재학생 8천여명중 2천여명이 학교근처에서 하숙ㆍ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2∼3평 남짓한 자취방에는 비키니옷장 냄비 등 간단한 취사도구 이불 책 등이 널려있고 방학동안 비원둔탓에 곰팡이가 간뜩 슬어있다.
지난해 겨울 한학생이 연탄가스에 중독돼 숨진 일이 있고부터는 한겨울에도 아예 불을 지피지않고 지내는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최근에는 방값마저 크게 올라 지난학기 학기당 20만원하던 자취방값이 35만원까지 뛰었는데도 2학기 방계약이 지난6월에 모두 끝난상태.
이학교 4학년 김경주양(23)은 2학년때까지 서울에서 통학을 하다 공부할 시간을 길에 모두 허비하는 것 같아 자취를 시작했다.
1천2백여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방이나길 기다렸으나 5∼6대1의 경쟁률에 밀려 후문앞 내리마을에 친구와 함께 방을 얻었다. 80여세대 자취촌이 들어서 있는 이마을의 별명은 「닭장맨션」. 축사나 닭장을 불록건물로 개조,10∼20칸씩 칸막이를 한곳에서 김양의 대학생활은 낭만도 추억도 기대할수 없다.
외국어대 용인캠퍼스는 학교에서 3㎞쯤 떨어진 곳에 모현면소재지가 있으나 대부분 창고를 개조한 방들이라 그나마 빈방찾기가 힘들어 10㎞쯤 떨어진 성남이나 광주까지 나가 자취하는 학생도 많다.
지방캠퍼스의 주거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도서관이나 서클룸 총학생회사무실 등에서 기거하는 「집없는」 학생들. 입학후부터 자취를 해온 중앙대 안성캠퍼스 차형광군(21ㆍ문예창작2)은 적당한 방을 구하지 못하자 이번 방학부터 도서관에서 생활했다. 도서관구석에 야전침대를 갖다놓고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짐은 서클룸에 맡겨놓았다.
건국대 충주캠퍼스 김모군(22ㆍ법학2)은 급우4명과 함께 학생회관에서 모기장을 치고 「합숙」하고 있다. 입학하면서 3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기숙사에 들어갔으나 2학년이 되면서 계속 있기에는 눈치가 보여 기숙사를 나왔다.
주거난이 심각하자 학생들은 군수ㆍ면장 등 지역기관장들과 직접면담이나 집단행동을 통해 문제해결을 모색하기도해 지역주민과 마찰을 빚는 사례도 많다.
건국대 충주캠퍼스학생들은 지난6월 집주인들이 일방적으로 방값을 인상하자 자취생협의회를 결성,항의하는 뜻에서 50여명이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생활했다.
중앙대 안성캠퍼스에는 방학인데도 「자취생 단결하여 방값폭등 저지하자」는 플래카드가 「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이름으로 걸려있다.
주거난ㆍ통학난은 교육당국과 학교의 근시안적 시책의 당연한 귀결이다. 문교부는 당초 지방거점도시에 설립을 유도했으나 사학재단은 관리운영의 난점과 지방국립대와의 경쟁을 우려해 경기일원에 앞다퉈 지방캠퍼스를 설립,재정난 해소의 돌파구를 찾으려 한 것이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와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제외한 대부분 대학은 서울에서 멀지않은 내륙오지에 위치,싼값에 교지를 확보할수는 있었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인근에 산업체도 별로 없어 대학도시가 갖춰야할 여건이 처음부터 부족했다
특히 캠퍼스주변이 대부분 절대농지와 그린벨트에 묶여 대학존형성을 근본적으로 기대할수가 없게 돼있는 것도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허허벌판에 강의실만 우뚝한 제2캠퍼스앞에서 한학생은 『4년간 스쳐가는 나그네 길』이라고 자조했다.【이충재ㆍ송용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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