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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만사태 식언ㆍ교언 난무/「언어의 교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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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만사태 식언ㆍ교언 난무/「언어의 교전장」으로

입력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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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봉쇄 아닌 저지”에 “해적행위”맞받아/“미국인들 인질 아니다… 다만 출국만 불허”/“자중지란”“아랍은 이 시대의 병자일 수 없다”미 영 해군의 본격적인 대이라크 「해상봉쇄」조치로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페르시아만 사태는 온갖 정치적 수사학이 총동원된 「언어의 교전장」이기도 하다.

식언과 교언,허장성세 및 「눈가리고 아옹」식의 무수한 성명과 발언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은 국제법상 전쟁행위에 해당하는 「해상봉쇄」를 단행했으면서도 「봉쇄」(Blockade)라는 표현대신 「저지」(Interdiction)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또한 3천여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부시이하 어느 누구도 이들을 인질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다.

미 영의 해상봉쇄조치에 대해 「군사적 도발」「공격행위」라는 건조한 표현대신 「해적행위」라는 원색적 용어를 동원한 이라크이지만 이라크와 쿠웨이트 거주 미국인들을 인질로 삼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들의 출국을 불허하겠다』고만 말하고 있다.

정치가들의 「필수요건」인 식언이 이번 사태처럼 뚜렷하게 노출된 경우도 드물 것이다. 이라크의 사담ㆍ후세인 대통령은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에게 쿠웨이트를 결코 침공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며칠못가 서슴없이 깨뜨려 버렸다.

쿠웨이트에 「진격」한 것은 쿠웨이트 혁명세력이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해놓고 침공 6일만인 8일 쿠웨이트를 이라크 영토의 일부로 덜컥 합병해 버렸다. 물론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을 암시하기는 했다. 거짓 약속으로 무바라크를 안심시키면서도 그는 한 대중집회에서 『이라크는 「생활수단을 앗아가는 것보다는 숨통을 끊어버리는 편이 낫다」라는 아랍의 속담을 잘 알고 있다. 신이여 우리가 미리 경고했음을 증거하소서』했던 것. 어쨌든 후세인은 식언의 대가를 현재 톡톡히 치르고 있다. 사우디와 터키를 결코 공격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하고 있지만 후세인을 「양치기 소년」으로 간주하고 믿지 않는 상대방은 다시는 안속겠다는듯 군대를 증강할 뿐이다.

후세인의 허장성세와 원색적 용어구사도 압권이다. 후세인은 쿠웨이트와의 합병을 공식화하면서 알ㆍ사바 국왕일가를 『제국주의 세력에 빌붙어 쾌락에 돈을 낭비한 도당들』이라고 매도했다.

그는 또 사우디에 미군이 진주하자 『이라크를 공격하는 자는 눈알을 뽑아버리겠다』고 경고했는가 하면 『공격자들과 침략자들의 발아래 있는 땅을 모두 불태우라』고 외쳤다.

미국등 국제사회의 대응이 예상외로 신속하게 이루어지자 이라크는 슬며시 화학무기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정부발표가 아닌 그리스주재 대사의 입을 통한 조심성을 보이기는 했으나 내용은 직설적이었다.

그리스주재 이라크대사는 미군의 페만 진주가 본격화된 9일 『우리는 매우 파괴적인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사용할 것』이라고 했던 것. 이에 앞서 후세인은 지난 5월 아랍정상들을 모아 놓고 『이스라엘이 공격할 경우 화학무기로 보복,이스라엘 국토의 절반을 초토화 할 것』이라고 호언,상당량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과시했었다.

후세인의 발언중 더욱 가관은 쿠웨이트합병을 아랍대의에 따른 행동으로 자찬한 것. 그는 이라크­쿠웨이트의 합병을 『제국주의 질서의 종식』으로 주장,강경아랍국 국민들로부터 「아랍의 기사」「아랍의 람보」「제2의 나세르」 등의 칭송을 불러일으켰다.

후세인의 「언어」가 원색적인데 비해 미국의 「언어」가 한결 세련된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적대감을 담뿍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라크와 막상막하이다. 부시는 후세인을 「아랍의 히틀러」로 규정,그의 전복을 암시했다. 부시는 후세인에 대한 국제여론이 악화될대로 악화된 지난 11일에는 『국민들에 의한 국가전복은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지구촌 일부 국가에서는 이라크에서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길 갈망하고 있다』고 말해 자신의 의도를 한꺼풀 더 벗겼다.

그러나 미국지도자들의 발언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교언이거나 「눈가리고 아옹식」이 대부분이다.

「봉쇄」와 「인질」이라는 표현을 기피하는 것이 「눈가리고 아옹식」의 대표적 예라면 이라크가 화학무기 사용불사를 시사했을 때 보인 대응은 교언의 대표적 예일 것이다.

부시는 『화학무기 사용을 용납할 수 없다. 만일 사용하게 되면 엄청나고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던 것. 이러한 애매모호한 표현은 일부 미국 언론인들에 의해 미국이 핵무기 사용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분명한 뜻을 밝히라는 언론의 요구에 대해 스코크로프트 안보담당보좌관은 부시의 발언을 단 한마디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되풀이 함으로써 미국의 핵사용 시사를 기정사실화 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곤혹스러운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처지는 지난 10일 아랍 정상회담에서의 그의 발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는 이날 개막연설에서 『아랍의 자중지난』『아랍은 이 시대의 병자일 수 없다』『이 싸움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우리는 체면과 안보를 동시에 잃을 시점에 놓여 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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