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말복. 앞으로 열흘후면 처서가 온다. 장마뒤에 찾아온 불볕더위도 마침내 한풀 꺾일 것이다.8월들어 신문의 사회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별의별 해괴망측한 사건,끔찍한 범죄기사가 연일 지면을 메우고 있다. 이러한 범죄는 더위때문에 일어난 우발적사건은 분명히 아닌 것 같다. 범행동기 자체가 자기만을 아는,남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데 있어 보인다.
거기에는 입장을 한번 바꾸어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관념은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타락하고 무절제하게 되었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어떤 사람은 신문들이 암울하고 잔인한 범죄기사보다 밝고 명랑한 뉴스를 왜 발굴하지 않느냐고 불만이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라면 몰라도 리버럴한 개방사회의 신문사회면은 바로 살아있는 「사회의 거울」인데 어찌하랴.
최근 10여일동안의 끔찍하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의 유형을 한번 살펴보자. 외국에서 신학박사학위까지 딴 아들목사가 교회를 물려주지 않는다고 음주끝에 아버지목사를 후려패 구속된다. 과연 종교인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인가. 제일은행 본점앞에 자리잡은 걸인 맹모씨(23)는 20대 불량배에게 동냥돈을 몽땅 빼앗긴다. 벼룩의 간을 빼내먹어도 유만부동이다. 그런가하면 헤어지자는 동거여인의 입원실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질러 여인과 생판모르는 입원환자의 목숨을 빼앗는다. 이쯤되면 입원환자는 횡액이라고 체념 할일인가.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훔친 봉고차로 3백50만원어치 인쇄용지를 빼낸 대학생,휴가를 하겠다고 강도짓을 한 고교생이 등장한다. 10대 떼강도,가정파괴범 기사쯤이야 이젠 약과다.
서울 창동에서는 만취한 20대 청년 3명이 버스를 가로막고 운전사를 구타하다가 이를 말린 승객의 갈비뼈를 7개나 부러뜨렸다. 이 광경을 목격한 승객 20여명은 「군자는 불입위만」이라선지 본체만체 했다고 한다. 누구나 입으로는 왼 시민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부산에서는 형사가 히로뽕 두목을 잡으러간 경관을 빼돌리고 도피시킨 희한한 사건이 터진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키게한 꼴인가. 산에가면 온통 버리고온 쓰레기악취가 코를 찌른다.
요즘 우리사회의 병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사회의 성한곳이란 없어 보인다. 물론 급속히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가치관의 혼돈이 일어나고 범죄발생률이 높아진다는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제악의 근원이 정치의 잘못에 있다고 간단히 치워버릴 수 없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해방후 45년. 그동안 우리가 시행한 교육,우리가 받은 교육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만 같다. 한마디로 사회생활의 규범,가치관이 붕괴된 것임이 틀림없다. 자기밖에 모르고 자신만 출세하며 돈벌면 된다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젊었을때 고생을 한 탓으로 내자식들만은 호강을 시키고 편히 살게해 주려는 발상밖에 없는 듯 하다. 돈푼이나 있다고 해서 국민학교 아동들의 생일잔치를 호화호텔 뷔페로 대신하고 외국의 스키강습투어까지 보내는 판이다.
가히 졸부들의 행진이라 할만하다. 내자식에게만은 비싼과외를 시켜 일류대학에 보내어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려 모두들 안간힘을 쓴다.
어린이는 본디 신체와 인격이 미완성품이다. 그리스의 스파르타식교육은 옛일로 친다 하더라도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어린자식은 짐승쯤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들이 나쁜짓을 했을때 사정없이 매질을 한다. 하나 일단 성인이 되면 일체간섭을 않고 자기책임하에 매사를 판단,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명치유신이후 일본의 현대화 과정에서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교육하면서 『남에게「메이와쿠」 (폐)를 끼치지말라』『정직하라』고만 가르쳤다고 한다. 그 교육이 오늘날 일본번영의 기틀이 되었다는 평가마저 있는 것이다.
한데 우리 주변의 실정은 어떤가. 자녀가 어렸을 적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금이야 옥이야』 귀엽게 기른다. 잘못을 저질러도 매섭게 야단도 치는 법이 없다. 그러다가 그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그제야 『데모하지 말라』『공부 잘하라』고 다그친다. 잡을때 안잡고 풀어 주어야 할때 오히려 고삐를 죈다. 앞뒤가 바뀌어도 보통 바뀐 것이 아니다.
외국의 언론은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거나 한국경제는 어른이 되지도 못한 주제에 벌써 조로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비아냥거린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의 하청업자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식자들이 적지 않다.
사회에 갖은 범죄가 만연한 것은 어렸을 적부터 잘못된 일을 한 어린이들을 나무라는 어른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권위주위시대는 지나가고 있음직한데 권위를 가진 기성세대가 없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대학 교수,사회지도층,학부모들이 이젠 남의 일처럼 개탄만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병든 사회를 바로 잡으려면 참교육의 힘밖에 없다. 그것도 일조일석에는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각계가 성한곳이 없게끔 되어있기 때문이다.
자기 에고이즘을 죽이고 더불어 산다는 연대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나무랄 것은 나무라고 칭찬할 일은 창찬해주는 관습이 정착되어야 사회가 정상화된다. 기성세대는 덮어놓고 움츠릴일이 아니다. 할말은 해야한다. 젊은세대는 다음세대를 자신들이 이끈다는 긍지를 갖고 사회를 바로 잡아갈 때가 아닌가.
모두들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한번쯤 크게 자성의 계기를 마련했으면 싶다.<논설고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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