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말하겠다”수락하자 집권당서 당황ㆍ저지/야당 강력반발에 내무장관 격분 즉석 사임불가리아가 「불가리아판 5공청산」의 진통을 겪고 있다.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꿔 지난 6월 총선에서 「정권의 재창출」에 성공한 구공산세력은 야당과 시민들의 거센 과거청산 요구에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35년 독재자 토도르ㆍ지프코프를 축출한 궁정쿠데타의 주역 믈라데노프가 지난 6일 여론의 압력으로 대통령직을 전격 사임한 이후 20일이 넘도록 후임자를 선출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내무장관이 의회출석도중 분에 못이겨 즉흥적으로 사임해 버리는 해프닝마저 연출했다.
또한 지프코프의 의회 증언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여야가 격론을 벌이는 가운데 수천명의 시위대가 의사당 앞까지 진출하는등 연일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 혼란에 따라 경제도 난맥상을 보여 불가리아 정부는 1백10억달러에 달하는 외채의 원리금 상환을 일방적으로 동결하는 사실상의 파산선언을 하기까지 했다.
불가리아가 이처럼 정치ㆍ경제적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6월 총선에서 사회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데 있다.
사회당은 4백석 의석중 2백11석을 획득,재집권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중요의사 결정에 필요한 의석수를 확보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해 야당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다.
지프코프 밑에서 18년동안 외무장관직을 역임한 「때묻은」인물인 믈라데노프를 여론을 이용,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낸 루카노프 총리등 사회당의 실세들은 지프코프의 의회증언을 통해 과거 청산을 매듭지으려 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새로운 혹하나를 덧붙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권력남용,국가재산횡령,그리고 주민간의 불신을 초래했다는 죄목으로 올 가을에 재판에 회부될 예정인 지프코프가 의회의 증언 요청에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사태는 꼬이기 시작했다.
의회의 증언준비위원회는 지난 27일 의회보고를 통해 ▲증언청취 시기를 8월 초순경으로 하고 ▲2시간동안 지프코프의 증언을 들은후 1시간동안 질의응답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증언준비위는 국가기밀이 노출됨으로써 외국과의 관계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생방송 대신 녹화편집방송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야당의석에서 고함이 터져나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야당측은 집권 사회당이 녹화중계방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국가기밀 노출을 우려해서라기 보다는 집권세력과 지프코프와의 관련여부가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알고 있는 것이다.
여야당간에 설전이 벌어지는 동안 내무장관 세메르지에프가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사임을 발표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세메르지에프는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의원들이 나의 인내심을 악용하고 있다. 권총이 있다면 이자리에서 자살해 버리고 싶다』고 내뱉었다.
이순간 의회는 완전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생방송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된 끝에 의회와 지프코프와의 중계역을 맡아왔던 한 야당의원이 「비공개증언 청취후 방영」하자고 여당측의 요구를 일단 수용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가 내세운 이유는 지극히 냉소적인 것으로 『국민들에게 이와 같은 수치스러운 꼴을 보여서는 안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각 정파가 입장을 정리할 시간을 가진뒤 30일 생방송 여부를 재론하기로 하고 의원과 각료들이 의사당 밖으로 나왔을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노한 수천명의 시위대였다. 이들 시위대는 증언의 생중계를 요구하며 사회당 타도를 외쳤다.
불가리아 집권사회당이 직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진퇴유곡은 「국가원수유고」의 장기화이다.
믈라데노프 사임 이후 집권 사회당은 4명의 후보를 연이어 내세웠으나 4차례 투표서 어느 누구도 당선에 필요한 4분의3의 지지를 얻지 못해 5번째의 표결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사회당의 총선승리 이후 수백명의 시위대가 소피아 중앙광장에서 아예 텐트를 치고 구정권 관련인사의 퇴진을 요구하며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도 해결하기 힘든 골치거리중의 하나이다. 지난 23일 정부는 이들을 겨냥,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새법령을 발표했지만 아직 경찰을 투입,해산시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서방 각국의 경제제재라는 루마니아의 전철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청산은 알렉산더 대왕이 「골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듯이 확실하고도 과감하게 단행했어야 했다는 것을 「불가리아의 물정부」는 이제 깨닫고 있을 것이다.〈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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