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회부에는 매달 한번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여자손님이 있다. 그 손님은 주로 하오에 찾아와 두툼한 편지봉투를 내놓고 영수증을 받고는 바로 편집국을 나가버린다. 1백만원. 봉투에 든 돈은 세어볼 것도 없이 1만원짜리 지폐 1백장이다.20대후반 아니면 30대초반의 그 여손님이 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부터이니 벌써 7월로 15개월이 됐다.
그 돈은 「함께사는 사회」의 성금이다. 한국일보 사회부가 89년연초에 신년시리즈 「함께사는 사회」를 연재,이웃을 늘리자는 캠페인을 시작한 뒤부터 「고정이웃」이 성금을 보내오고 있다.
시리즈를 나중에 보았다는 J씨는 「함께사는 사회」의 취지와 성금의 용도등을 전화로 물어보고 1백만원을 보내온 뒤부터 매달 부인에게 성금 심부름을 시키고 있다.
이 얼굴없는 독지가가 궁금했던 우리는 지난해 연말을 비롯해 수차례 인터뷰를 시도하며 그를 지면에 부각시키려 했으나 J씨는 한사코 신문에 나는 것을 사양했다.
『좀더 보람있는 일을 하거든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는 말에 찾아갔던 기자는 취재에 실패하고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는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오곤 했다. 유흥과 사치의 거리인 서울 영동일대에 대형 서점을 내는 것이 그의 꿈이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한국일보사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공동주관하는 「사랑의 쌀나누기」에도 익명으로 1백만원을 냈다. 익명을 원하는 J씨의 의사를 존중해 우리는 그 여손님에게도 궁금한 것을 묻지 않고 그대로 보내곤 한다.
J씨외에도 「함께사는 사회」의 고정 이웃은 많다.김종백 창원 김영희 정상희 홍현희 김혜승 고정자 백명지 이창자 문명호 이혜진 박봉연 박진후 전복식 우정규 한보연…. 이 자랑스러운 이름들이 지난해 1월이후 지금까지 매달 「함께사는 사회」의 성금구좌(조흥은행 3224025173)로 온라인성금을 해오고 있다. 어쩌다 송금하지 못한 경우에는 다음 달에 2배를 보내오기까지 하는 그들 덕분에 성금액은 7월25일 현재 5천4백만원을 넘어섰다.
그들중에는 소액환을 부치면서 계절이 변화할때마다 가난한 이웃의 살림을 걱정하며 『언제쯤 진정으로 함께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고 안타까워하는 편지를 동봉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하고 정상배 모리배가 들끓어도 이처럼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선의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을 보는 것은 흐뭇하고 즐거운 일이다.
그들이 자랑스러운 것은 이웃을 돕겠다고 결심한 자기자신과의 약속에 충실한 점일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다른사람의 기쁨을 나누어 2배가 되게하고 슬픔은 나누어 절반으로 줄여주는 우리의 참된 이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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