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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통합과 정당구도의 방향/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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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통합과 정당구도의 방향/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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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의 축」지양 「이념의 축」형성 바람직여당에 의한 「7ㆍ14」 국회 날치기 법안통과와 이에 뒤이은 야당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사퇴 및 장외투쟁으로 정국은 극도로 경색된 가운데,거여에 대항하기 위한 야권통합 움직임이 급진전되고 있다. 평민ㆍ민주 양당과 통추 등 야권 3자간의 통합이 언제ㆍ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나,거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적 야당의 출현을 염원하는 국민적 기대를 업고 야권통합의 기세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국 정당정치의 위상과 그것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논의하여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정치사의 대부분은 「골리앗」처럼 막강하기 그지없는 여당과 이에 비해 힘이 크게 부치는 야당과의 지리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여당의 독주에 대한 회의와 좌절속에서 국민은 주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여당에 효율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통합야당을 열망했다. 그 때문에 야당들은 전열이 흐트러졌다가도 대통령선거나 총선이 다가오면 거의 어김없이 하나로 뭉쳤고 비록 번번이 실패로 끝났을 망정 어두운 권위주의 역사의 그늘아래서 지속적인 반독재투쟁을 벌일 수 있었다.

여기서 논의의 필요상 여ㆍ야의 양극이 서로 힘을 겨루며 정권다툼을 하는 양상을 <대항의 축> 이라고 명명한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사는 주로 이 <대항의 축> 을 중심으로 맴돌았다. 민주화투쟁의 명분을 앞세운 야당의 대여투쟁은 대체로 치열했지만,남북분단의 특수상황 때문에 이념성을 표출할 수 없었다. 여기서 태어나는 것이 한국형 보수양당제였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국정치 특히 그 정당정치의 기본구도를 바르게 설정하기 위해 편의상 또 하나의 축을 설정한다. 그것이 바로 상이한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복수정당들이 경합하는 <이념의 축> 이다.

민주적 정권교체가 이미 상례화된 서구의 정당정치가 대체로 이 축을 중심으로 맴돌고 있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정치가 늘상 <대항의 축> 을 중심으로 맴돌다 보니 여ㆍ야간의 이념성이 결여된 보수정당들이 존재했을 뿐 80년대에 진입하기까지 진보적 이념을 표방하는 혁신정당의 출현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하여 우리 사회의 사회ㆍ경제적 이익상황은 엄청나게 변화했지만 실제로 정당체제는 이 변화를 바르게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번 대통령선거는 한국 정치사의 큰 흐름으로 보아 <대항의 축> 에서 펼쳐지는 최후의 결전이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야권이 나뉘어지고 끝내 양김씨간의 이해다툼속에서 민주세력은 다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그러나 이후 정치민주화의 과정속에서 우리사회내의 이념갈등이 첨예하게 표출되면서 <이념의 축> 이 정치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지난 국회의원 총선 이후 여소야대로 표현되던 제도권내의 4당과 재야세력들로 구성되는 다원적 정치구도는 기존의 <대항의 축> 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 구성을 선보였다. 그러나 돌연한 3당통합과 민자당이라는 거여의 출현은 강력한 통합야당의 출현을 촉구하는 거센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따라 <이념의 축> 으로 서서히 움직이던 정계의 기류는 다시 <대항의 축> 으로 급선회하는 것이다. 역사는 윤회하는 것인가.

<대항의 축> 과 <이념의 축> 은 그때 그때의 상황인식과 장기적 정치구도의 맥락에서 적절히 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늘날까지 한국 정치의 기본구도가 전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고 현재도 그 흐름이 강세를 띠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 나라 정당정치의 앞날을 조망할 때 <대항의 축> 에 지나치게 편향된 정치설계는 단기적 문제해결이 되기 쉽고,그렇게 되면 훗날 정계개편의 새로운 진통을 수반하게 될 개연성마저 없지 않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양축을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있는 방도는 무엇인가.

우선 야권통합은 가능한 한 이념적으로 서로 조화가능한 정치세력끼리 뭉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야권의 대동단결이라는 하나의 명분으로 평민ㆍ민주 양당과 재야의 급진세력까지 모두 한지붕 아래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무리한 발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권통합은 평민ㆍ민주양당과 이들과 이념적으로 화합이 가능한 온건재야등 중도민주세력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온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미 진보정당으로 색깔을 분명히 하고 독자적으로 활로를 개척하고 있는 민중당(가칭)이 통합야당전선에 참여하지 않고 있음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들은 필요한 경우 대여투쟁에서 연대를 형성하면 될 것이다.

여당인 민자당은 국민이 그에게 걸었던 한가닥 희망,즉 거여일 망정 민주적 개혁정당으로 탈바꿈할지도 모른다는 아주 가냘픈 기대를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국회의 파행운영은 고사하고 토지공개념과 세제개편안 등에서 보여준 기득권보호에 급급한 모습은 당의 보수ㆍ반민주체질을 역력하게 보여주었다. 민자당에 대한 실망은 자연 통합야당에 대한 부푼 기대로 이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 움트고 있는 통합야당이 과연 많은 국민들이 염원하는 민주개혁정당으로서,또 책임있는 대안적 정당으로서 제구실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이다. 새 정당의 초석이 되어야 할 기존 두 정당이 이제껏 제도권 정치속에서 보여준 두드러진 모습은 기껏 대권투쟁이나 지분싸움등 권력게임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회의는 근거없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이 나라 정당정치의 구도는 보수여당,중도개혁지향의 대안적 야당,그리고 진보정당의 세 축이 중심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산의 진통을 겪고 있는 통합 야당은 자신의 입지를 <대항의 축> 에서 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념의 축> 에서 찾는 것이 민생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첩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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