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다가설 듯 싶다하면 도로 물러서는 것이 남북관계의 실상이 아닐까. 물러설 기미가 보일 때 오히려 더욱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미약했음이 엄연한 사실이라 할 것이다. 남북교류의 실현은 더 물러설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나서지 않은 한,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움을 충분히 깨닫고 겪어왔다.민족대교류 선언에 대한 북한측의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우리 정부는 남북왕래를 위한 전제조건을 타결하자는 당국자회담을 잇달아 제의했다. 7ㆍ20선언이 원론의 제시라면 그러한 목적달성을 향한 「각론」의 정비작업을 하자는 뜻과 결의라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원론만의 제기는 정략과 선전이라는 역선전의 자료가 될 수 있을지라도,각론이 확실하면 무조건 거부의 이유는 타당성을 잃기 때문이다.
3개 부서장관 회견을 통해 오는 27일 판문점에서 실무접촉을 열자고 밝히고 남북한 당국자가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수 있는 구체적 사안들을 제시했음은 남북관계의 진일보라 할 만하다. 지금까지 비방과 험담의 대상으로 삼은 문제들을 조목조목 따져서 풀 것은 풀고 고칠 점은 고쳐가자는 뜻이 담겼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판문점 북쪽에서 열릴 8ㆍ15 범민족대회에 참가를 밝혔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 대회에 공을 들이면서 전민련과 전대협 두 단체만을 초청한 바 있다. 정부의 판단은 이것을 함정으로 보고 경계하는 것이다. 이 선별초청이 실현되면 하나의 선례를 이뤄 앞으로 남북접촉에서 북의 선별주의가 강화될 것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측은 참가를 희망하는 우리쪽의 모든 단체를 받아들임을 거부하지 말아야 마땅하다.
또한 남북간 법률의 장애요인이나 콘크리트장벽 같은 군사문제도 일방적 철폐요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문제점을 실무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리라는 것이 우리의 소신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그렇잖아도 외국의 언론은 남북한의 제의가 한반도를 선전장으로 전락시키며 동유럽식의 변화는 요원하다는 비평을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비평은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는 일면과 더불어 대화와 협상의 미숙을 지적받는 것 같아 언짢은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북한 당국에 일방적인 요구를 하고 있음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밝혀 두고자 한다. 낭비적이며 대립을 조장하는 정치선전엔 이제 신물이 날 만큼 났다. 축전이다 대회다 해서 떠들썩하게 한마당 벌여 놓는 것이 과연 통일에 무슨 도움이 주는 것인지 깊이 생각할 단계에 이르렀다. 당장 체제문제로 교류가 곤혹스럽다면 장애요인을 따지는 모임마저 못한다고 고집을 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정부당국에도 일관성의 유지를 강력히 요구하는 바다.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한다는 인상은 배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부담이 있더라도 전진적 자세는 계속 유지되어지기를 원한다. 무엇보다 통일에 대한 국민의 참여의식을 높이고 문제해결의 주체가 결국은 국민임을 유도하는 대담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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