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그립다.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어진 재상이 아쉽고 집안이 어려울수록 양처가 그립다지만 오늘날 같이 부박하고 부패한 세상에서는 청수하고 강직한 선비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진다.예부터 수기치인을 덕목으로 삼아온 우리의 참된 선비들은 스스로를 닦고난 연후,사이의 길에 나서서는 경세제민의 경륜을 사심없이 펼치면서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받지도 않는 청빈을 자랑으로 알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미련없이 초야에 도로묻혀 한유한 학문의 세계에서 자적하였다.
그리고 홀로 있을때를 더 삼간다는 신독의 자세로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지기추상 대인춘풍의 삶을 가꿔갔다.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선비들이 애송해온 동양의 명구「맹자」 등문공장구하는 장부의 도,선비의 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설파하고 있다.
거천하지광거 입천하지정위 행천하지 대도 득지여민유지 부득지독행기도 부귀불능음 빈천불능이 위무불능굴(넓은 천하를 집삼아 살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서 천하의 대도를 행하나니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그렇지 못하면 홀로 도를 행한다. 부귀도 어지럽히지 못하고 가난하고 천해져도 동요하지 않으며 위세로도 굴복시킬 수 없다)
사군에 바탕을 둔 왕조시대의 선비나 동서남북 어디에도 머리숙일 곳이 없어 옷속에 물이 스며들도록 한겨울에도 고개를 세운채 세수를 했다는 단재와 같은 선비의 모습은 이제 시대착오일시 분명하다. 다만 오늘날에도 그 순일한 지조와 매운 기개가 그리운 것이다.
사람을 키우지 않는 세태,이른바 보혁 어느 곳에도 가담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양극의 세파,모든 것이 바로 상품화해 버리는 세상에서는 순수한 정직이나 정직한 순수는 설 땅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미 한 시인은 이 비곡하고 불의한 시대에 자신이 설 땅이 없음을 「국화앞에서」라는 시로써 한탄하였다.
그들의 초속과 우수와 영감과 기개/그들이 사랑한 시주의 의미를 의젓이 묵시하는 동양의 꽃이여/내 또한 시와 술을 사랑하고/불의와 용열을 미워하건만/내게는 돌아갈 전원도 유적과 표박과 절규의 땅도 없어….
그럴수록 선비가 더 그립다. 홀로 있을 때 스스로를 삼가기는 커녕 남의 눈을 피해 나쁜 짓이나 하고 물러날 줄 모르고 남에게만 추상같고,자신의 안일을 좇아 표변하는 정상배 모리배로 가득찬 세상을 맑게 해줄 청류는 어디에 있나.
우리 사회에는 때묻지 않고 올곧은 원로나 우러러볼만한 사표가 너무도 없다. 모두가 쉽게 웃자라고 스스로를 아낄줄 모르는채 오욕에 물들어 자신을 망쳐버린다.
선비가 그립다. 선비의 청냉하고 준열한 목소리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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