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사ㆍ병원등 일방적 규정 25건 무효판정/자동차사 약관 고쳐 연 수백억 비용절감도/벌칙조항등 강제력 부여해야대학교수 변호사등 7명의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작은 위원회가 국내유수의 자동차보험회사 건설ㆍ유통업체들과 「약관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87년 7월 약관규제에 관한 법률의 시행과 동시에 활동을 개시한 경제기획원 약관심사위원회(위원장 손주찬 학술원회원)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수천명의 조직을 가진 거대기업과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별 소비자 사이의 각종 거래는 왕왕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의 일방적 피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보험 할부판매등 장기신용거래가 보편화되는 추세인 요즘 소비자가 손해보는 사례가 생길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진다.
약관심사위는 출범이후 만3년동안 자동차보험,가전제품 및 자동차 할부판매,주택분양계약,콘도미니엄분양,공중전화,상가임대,병원등 총25건의 부당한 약관을 무효판정,시정권고 조치했다.
그동안 실생활속에서 뭔가 석연치않게 손해보는 느낌을 주어온 각종약관들이 잇따라 철퇴를 맞은 셈이다.
약관심사위가 무효판정한 약관조항을 살펴보면 『과연 이럴수가 있을 까』하는 의문이 생길정도로 터무니없는 내용들이 버젓이 통용됐음을 알 수 있다.
모대학부속병원은 수술이나 치료에 앞서 환자들에게 『입원기간중 병원의 모든지시에 일체 순응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 하등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약관각서를 강요했다. 병마에 시달려 어떠한 조건이라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환자의 입장을 교묘히 역이용한 횡포였던 것이다.
또 롯데ㆍ현대ㆍ신세계등 국내유수의 백화점은 임대계약이 끝나 세입자가 점포를 비운뒤 최고 6개월내에만 보증금을 돌려주면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시정조치를 받았다.
이은영 약관심사위원(외대법대교수)은 『그동안 우리나라는 계약자유원칙으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우선의 법리를 지나치게 중시해왔다』며 『계약자유원칙이 물론 소중하나 이는 거래쌍방이 대등한 교섭력을 갖고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출발,자칫 현실적인 강자의 횡포를 방임하는 빌미가 되기쉽다』고 지적했다.
부당한 약관피해를 감시견제하는 1차적인 책임은 물론 소비자 개개인에 주어져 있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보호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6대도시 소비자 1천명가운데 ▲약관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절반에 못미치는 44.3% ▲약관을 상세히 읽지않은 사람은 무려 65.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에 어려운 전문용어로 쓰여진 약관내용도 문제이거니와 각종 신용거래가 급속히 확대되는 가운데 『설마 뒤탈이 나겠느냐』며 대수롭지않게 여기는 거래관행이 일반화돼있음을 알려주는 조사결과다.
소비자가 일방적인 약관으로 피해를 입게됐을 경우 누구나 지체없이 약관심사위에 심사청구를 의뢰할 수 있다.
심사청구는 별도의 양식이 없이 ▲청구자의 주소 성명 ▲사업자(약관거래당사자)의 상호 주소 ▲문제약관조항 사본 ▲심사청구의 이유등을 간략히 적어 경제기획원(물가정책국 유통소비과 (503)9066∼7)에 제출하면 된다.
지난해 9월 정경술씨(66ㆍ경기 안산시 원곡동 792의 29)는 현대자동차회사를 상대로 2중3중의 연대보증등 각종 부대비용이 지나치게 많음을 지적,위법여부의 심사를 의뢰했다. 정씨는 문제조항이 무효로 판정된뒤 인지대등 14만여원을 돌려받고 현대측의 공식사과까지 받았다. 정씨는 현대등 국내5개 자동차회사가 지금까지 고객에게 연간 수백억원대의 불필요한 부대비용을 강요해온 관행을 고치도록하는 역할도 해냈다.
약관심사위는 약관규제법상 60일이내에 문제조항을 고치도록 유도하는 시정권고조치를 내릴뿐 만약 해당업체가 이를 거부할 경우 별다른 강제규정을 갖고 있지않다.
따라서 앞으로 ▲보다 강제력을 갖는 규제ㆍ벌칙조항마련 ▲불복시 재심요구,구제절차등 법적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있다. 덧붙여 약관피해자고발센터등 체계적인 소비자보호장치가 아쉽다는 의견도 소비자단체일각에서 제시되고 있다.<유석기기자>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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