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민주주의를 할 자격(조두흠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할 자격(조두흠칼럼)

입력
1990.07.17 00:00
0 0

『이 아이는 분명히 제자식입니다』『아니오,죽어도 내앱니다』­한 어린아이를 놓고 두 여인이 한사코 자신이 어머니라고 주장한다.재판에 임한 솔로몬왕은 기막힌 판결을 내린다. 『하는 수 없다. 아이를 정확히 둘로 쪼개서 반씩 갖도록 하라』그러자 한 여인은 이 판결에 승복하겠다고 좋아한다. 하나 다른 한 여인은 『내가 포기할테니 아이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솔로몬왕은 그제야 자기자식임을 포기한 여인이 진짜어머니라고 선언,아이를 돌려주고 반씩 나누어 갖겠다는 여인에게 엄한 벌을 내린다.

작금 우리정치 돌아가는 상황이며 사회각계의 갈등ㆍ분규를 보고 문득 생각나는 고사다. 우리정치인들은 누구나 자기주장이 관철되어야 민주화가 된다고 목청을 높인다. 거대여당이 법안하나 제대로 통과못시키고서야 어떻게 민주주의를 정착화하고 민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야당은 지자제선거법 국가보안법 안기부법등을 개정하지 않고 어찌 민주개혁이 이루어지며 토론도 없이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냐고 고함을 지른다.

모두들 입으로는 민주화,선진화,국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면서도 하는 짓은 자꾸만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극언한다면 우리정치인,국민에게 과연 민주주의를 할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의문시된다는 이야기다. 과연 누가 나라를 두갈래로 찢지않고 살리는 애국자일까.

우선 국회의 양상부터 살펴보자. 3분의2이상의 절대의석을 보유한 민자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마치 『우리가 힘이 없어 국정을 끌고가지 못하는줄 아느냐』는 식의 밀어붙이기 발상을 그대로 시현했다. 방송관계법개정안 국군조직법개정안을 해당 상위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통과시키더니 제150회 임시국회회기를 이틀 앞둔 14일 본회의장에서 26개 법안을 단30초만에 날치기 처리해 버렸다.

그 심의과정에서 욕설이 오고가더니 야당의원의 명패투척으로 여당의원이 중상을 입고 그 보복인지 여당의원이 야당의원을 들었다 놓는등 폭력이 난무한다.

국회는 본디 오순도순하게 국정을 논의하는 마당이지 결코 돌팔매질이나 레슬링의 연습장은 아니리라. 민자당창당때 드높이 외치던 민주,번영,통일에의 장담은 어디로 갔는가. 설마 이런 방식으로 난마처럼 얽힌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바닥에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의 차기대권구상이 담겨있다면 본말전도도 유만부동하다.

제1야당인 평민당의 태도에도 문제는 적지않다. 지난번 총선이나 대통령선거결과를 놓고 지자제를 조기실시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을 탐낸 나머지 시급한 민생법안의 심의를 보이콧했다면 이것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거대여당과 제1야당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 민주당의원들의 의원직사퇴도 얼핏 명분대로 수긍가지 않는다. 하늘을 우러러 일편의 사심도 없는 결단이었을까. 여야할것 없이 당리당략,자파의 에고(이기)를 우선시하는 흠이 있어 보인다.

평민당도 뒤늦게 거당적으로 의원직사퇴서를 쓰고 적당한 시기에 제출하겠다고 한다. 격하기 쉬운 여론은 국회의 이와같은 파행적 운영을 보고 의원모두가 물러나 총선거를 깨끗이 치르자는 방향으로 돌고 있다. 하나 국민은 어느누가 의원직을 사퇴하느냐,누가 다시 당선되느냐에 큰 관심은 없다. 이런 추악한 정쟁의 되풀이에 식상해 있다.

정치불신 심지어 국회무용론이 어느때보다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줄 안다. 「정계의 물갈이」가 요청된다는 소이다.

우리사회가 안은 고질은 비단 수십년간 계속된 민주화의 정통성차지하기에만 있지 않는 것같다. 중소기업의 도산,조업단축,물가고는 날로 심각하고 경제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주가는 내리곤두박질쳐 6백80선을 하회했다.

기업가는 호황일때 시설확충,첨단기술연구개발을 등한시하고 부동산투기,주식물타기등 재테크에 열을 올려왔지 않는가.

근로자는 보다나은 생활보장만을 줄기차게 주장,임금인상을 얻어냈으나 물가앙등때문에 실질적 혜택은 반감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족벌경영으로 지탄을 받아온 세종대분규는 체제와 운동권간의 대리전양상마저 띠더니 마침내 수천명 학생의 유급사태를 목전에 두고 있다. 누구를 위한 투쟁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방송관계법의 전격통과는 말도 되지않는 억지 행보다. 독소조항을 빼고 민방을 허가함으로써 당장 현행 공영방송의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정부ㆍ여당의 논리도 지나치다. 방송관계법개정이 국회의 한회기쯤 늦게 이루어진다고 해서 천하대세에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4개방송 노조가 방송제작자체를 거부하고 나선것도 집단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을만하다. 모든 투쟁은 자기 본분을 다하면서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지 않는가.

우리사회의 모든 난제를 순리로 풀 책무는 정치권에 있다. 그보다도 일차적으로는 국정을 맡은 정부ㆍ여당에 응분의 책임이 있는 법이다.

요즘 정치권의 작태는 의식적으로 우리사회를 무정부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착각을 일으킬 정도여서 참으로 우려된다. 동서의 지역감정하나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주제에 남북통일을 지향한다고 큰소리 치는 것도 어색한 일이다. 영호남간의 현재 지역감정을 그대로 둔채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치른다 한들 의석분포에 획기적 변화가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다.

지금 바깥세계에서 한국을 보는 눈초리는 차갑다.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한국을 아시아 네마리용의 선두로 치던 호의적인 태도는 급변,『그러면 그렇지. 한국인에겐 한계가 있어』라고 비웃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투쟁 일변도의 정치는 제발 지양해주었으면 싶다. 타협의 정치,진정한 대화의 정치를 할 능력이 왜 결핍되어 있을까. 정치지도자들은 민생이라는 염불보다 대권이라는 잿밥에 온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진실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과연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할 자격은 있는가. 제헌절42주년을 맞아 다시한번 자성해본다.<논설고문> >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