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서 “야 막으라” 신호로 순식간 “가결”/치밀한 사전각본… 의장단 양동작전/무선마이크ㆍ녹음기까지 준비 「저지」 속수무책/본회의/“차라리 홀가분” 의원배지 떼고 귀가/비통ㆍ탄식속 5시간 회의 “당장 떠나자” 주장도/평민제1백50회 임시국회가 끝내 「파국」으로 종결됐다.
민자당은 14일 상오 김재광부의장이 본회의장의 의원석 중앙에서 행한 「편법사회」를 통해 각종 쟁점법안및 추경예산등 정치현안을 기습처리,정상화 가능성이 전무했던 이번 국회를 결국 수와 힘의 우위로 밀어붙였지만 「편법처리」의 수준만은 그야말로 절묘했다.
▷본회의◁
○…「H아워」인 14일 상오 10시30분,국회본회의장. 민자당은 광주보상법,국군조직법.방송관계법등 26개의 본회의회부 안건들을 단 33초만에 김재광부의장의 「의석사회」로 기습ㆍ단독처리하는 것으로 탈 많았던 제1백50회 임시국회의 막을 내렸다.
이날 민자당의 전격적인 「날치기 강행」은 치밀한 사전 각본아래 박준규의장과 김부의장의 양동작전에 의한 「성동격서」 방식으로,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진행. 의석 정중앙의 맨뒷줄 박태준최고위원 왼쪽의 자기자리에 앉아있던 김부의장은 박의장이 의장출입문을 통한 2번째의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순간,서정화수석부총무는 『막아라』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손을 흔들어 작전개시 신호를 여당의원들에게 보냈고 김부의장자리 바로 뒤에 서 있던 평민당의 이협 홍기훈의원등 김부의장 감시조가 민자 의원들의 차단벽에 막혀 꼼짝달싹 못하는 사이 김부위장은 좌석 바로 옆통로를 5m쯤 걸어나가 『제11차 본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는 말로 호주머니에서 꺼낸 「본회의 강행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
김부의장은 여당의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강우혁의원이 받쳐든 무선마이크와 소형녹음기에 대고 『보고사항은 오늘 회의록에 게재하겠습니다. 의사일정 제1항부터 제26항까지 일괄성정합니다. 이상 26건에 대한 심사보고,제안설명및 국정조사결과 보고와 24항 25항 관련 서면수정동의안 제안설명은 유인물로 대체하고 질의및 토론은 생략하며 1항부터 21항까지는 제안및 심사보고한 대로,22항 23항은 보고서 대로,24항 25항 수정한 부분은 수정한 대로…』라고 거침없이 낭독해 나갔다.
김부의장은 이어 『기타 부분은 원안대로 각각 의결하고자 하는데 이의없습니까』라고 묻기가 무섭게 『이의없습니다』라는 여당의원들의 합창이 터져 나오자마자 『각각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라고 구두 선언.
김부의장은 또 제26항의 평민당이 제출한 광주관련법률안에 대해 『의사일정 26항은 폐기코자 하는데 이의없습니까』라고 물은데 이어 『7월16일 하루는 휴회코자 하는데 이의없습니까』고 물었고 『이의없다』는 여당의원들의 「즐거운 비명」이 나옴과 동시에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산회를 선포합니다』라고 서둘러 회의를 종결.
김부의장이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33초동안 평민당 의원들은 민자 의원들이 본회의장 통로 곳곳에서 십수명씩 보호막을 치고 있는 가운데 고함과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
이찬구의원(평민)은 의석 3∼4개를 가로질러 뛰어넘으며 항의하다 민자 의원들에게 잡혔고 평민 의석에선 『김재광 더러운 ×』 『노태우ㆍ김영삼ㆍ김종필 셋이서 잘 해봐』등 야유와 욕설이 난무.
산회가 선포된직후 김부의장은 민자 의원들의 「경호」속에 본회의장을 빠져 나갔고 민자당 의원들도 2∼3분여동안 평민 의원들과 입씨름을 벌인 뒤 총총걸음으로 의사당을 「탈출」.
○…「날치기 처리」가 끝난 뒤 평민 의원들은 의장석과 속기석을 둘러싸고 『속기사들이 기록을 하나도 하지 못했으니 무효』라고 주장,속기사들로부터 「회의록을 작성한 바 없다」는 확인서까지 받아냈고 이어 강천구의사국장을 끌고 오다시피해 『경위를 실토하라』고 추궁. 이협의원은 『김부의장에게 무선마이크를 건네주려던 최황수의사국 위원과장으로부터 마이크를 빼앗아 속기사들이 들을 수 없었고 이 때문에 회의록이 작성되지 못했으니 본회의 자체가 무효』라고 흥분.
또 신기하의원도 기자석을 향해 『박의장이 입장하는 순간 우리측 저지로 머뭇거리자 김부의장이 뛰쳐나가 사회를 본 것이니 사회권을 넘겨준 것도 아니어서 역시 무효』라고 주장.
○…26건의 안건이 무더기로 기습처리된 뒤 평민당의 「의장감시조」인 유인학ㆍ김충조의원등은 허탈한 표정으로 박의장실로 몰려와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하소연.
유의원은 『어차피 파장이고 다 끝난 것 아니냐』고 한숨을 짓자 옆에 있던 박의장 특보인 강우혁의원은 『이제 사태수습을 하고 8ㆍ9월에 다시 만나 얘기하자』고 달랬고 이에 김의원은 『13대 국회도 6공도 다 끝났다. 이젠 국민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분통.
○…이에앞서 박의장은 상오 10시5분과 김부의장이 기습사회에 들어가기 직전인 상오 10시 29분께 두차례의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으나 평민 의원들의 사력저지로 좌절.
평민 의원들은 이날도 전날에 이어 개회예정시간 5분전인 상오 9시55분부터 의장석 주변과 의장출입통로를 점거,개회자체를 원천봉쇄했는데 박영숙부총재까지 「저지조」에 합류한 것이 유일하게 전날과 다른 모습.
이날 본회의장은 「거사」를 의식한 때문인지 방청객을 일체 들이지 않았는데 정대철 김원기의원 등 수명의 평민 의원들은 잠시 본회의장 밖에 나가 있다가 민자 의원들이 중앙출입문까지 봉쇄하는 바람에 아예 회의장 진입에 실패.
▷평민당◁
○…평민당은 날치기 처리로 허를 찔리자 본회의장에서 긴급 의총을 열어 농성을 결정하는 응급조치를 한 뒤 장소를 1백46호실로 옮겨 비공개 의총을 갖고 의원직 사퇴문제를 논의.
하오 3시30분부터 5시간동안 계속된 마라톤 의총은 비통과 탄식이 교차하는 분위기속에서 만장일치로 의원직 총사퇴를 결정했고 의원들은 의총이 끝나자마자 회의장에 마련된 서명대에서 사퇴서를 작성. 의원들은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으로 총무단이 나눠준 백지에 「본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합니다」라고 쓴 뒤 자필서명을 했는데 김대중총재가 맨마지막에 사퇴서를 써 일괄사퇴서 작성을 마무리.
김총재는 사퇴서를 쓴 뒤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그동안 수고 많았고 여러가지로 고마웠다』고 인사를 건네자 의원들은 한결같이 숙연한 표정.
이날 의원총회는 앉아있는 순서대로 앞줄부터 발언에 들어갔는데 대세가 의원직 사퇴쪽으로 확연히 기울자 후반부에 발언대에 나선 의원들은 사퇴의 당위성보다는 찬반의 견해만을 표명했다는 것.
회의의 초점은 의원직 사퇴를 기정사실로 해서 제출시기와 제출방법등에 모아졌는데 이날 당장 제출하자는 견해와 사퇴서를 써 김총재에게 맡긴 뒤 지구당의 추인을 받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는 후문.
즉각적인 사퇴서 제출을 주장한 의원들은 『곧바로 내일부터라도 의원회관을 비우고 세비는 물론 보좌관 급여까지 받지 말자』고 제의하는 등의 결백성을 보였으나 중진의원들이 『우리를 뽑아준 지역구민에게 추인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성급한 제출에 제동.
또 마지막으로 발언에 나선 김총재는 『참석자 전원이 천신만고 끝에 얻은 의원직을 국민을 위해서라면 쾌히 내놓겠다는 것을 보고 목이 메인다』며 잠시 말문을 닫자 상당수 의원들이 낙루를 하기도 했다고 김태식대변인이 전언.
김총재는 이어 『여러분과 함께 당에 몸담고 민주화투쟁을 한다는게 자랑스럽다』면서 『이 순간처럼 행복을 느낀 적은 없다』고 의원들의 결연한 행동에 경의를 표시.
김총재는 이어 『우리의 의원직 사퇴는 민자당의 동조를 얻어 국회해산으로 이어져야 한다』면서 『조기총선과 지자제선거를 쟁취해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자』고 강조.
이날 의총은 김대변인이 낭독한 의원직 사퇴결의문을 박수로 채택한 뒤 종료됐는데 배지를 떼면서 회의장을 떠나는 의원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사퇴의 변을 피력.
박영숙부총재는 『3당합당이후 잘못되고 있는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고 김원기의원은 『국민의 힘을 등에 업고 싸워나가겠다』고 강조.
그런가 하면 정대철의원은 『한마디로 시원하다』면서 『빨리 총선을 실시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유인학의원은 『3당합당이후 이날이 올 것을 기다렸다』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정치회복에 노력하겠다』고 언급.
의원들은 의총이 끝난 뒤 의원직을 사퇴했기 때문에 「더이상의 본회의장 농성은 무의미하다」면서 총총걸음으로 의사당을 떠나기도.
이날 의총에서 발언에 나선 이철용 채영석 정상용의원등은 『이제 국회는 없다』면서 『그러나 사후대응은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해나가자』고 원칙론적인 입장에서 당의 단합을 강조.
특히 이의원은 발언대신 즉석 자작시를 낭독,『가자 가자 국민의 품으로 어머니의 품으로』를 되풀이 하며 의원직 사퇴를 은유적으로 주장.
사회를 맡은 김영배총무는 『시정잡배들이 뒷골목에서 조차 하기 힘든 부끄러운 행동들이 의사당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면서 『이는 전적으로 3당야합에서 비롯된 것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하는 길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며 의원직 전원사퇴 분위기를 유도.
▷민자당◁
○…민자당은 이날 상오 본회의에 앞서 국회 146호실에서 긴급 의총을 열고 국군조직법등 3대 쟁점법안을 비롯 26개안건 강행처리를 위한 전의를 다짐.
김동영총무는 『모두 한몸이 되어 예정된 안건을 처리할 수 있도록 상오내내 본회의장을 떠나지 말아달라』며 곧 「비상작전」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
이어 김영삼대표는 의총이 끝난 뒤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평민측과 김대중총재를 비판한 뒤 『우리는 오늘 회의장을 옮기지 않고 떳떳하게 본회의장에서 처리할 것』이라며 「강행처리」를 사전에 예고.
이에앞서 김대표를 비롯,당3역과 김윤환정무1장관은 별도로 만나 이날 본회의에서 양동작전을 개시키로 하고 총무단이 구상한 「시나리오」를 본회의 개의 30분전에 각 상임위원장과 간사들에게 은밀히 통고한 뒤 소속의원들이 이석하지 않도록 당부.<이병규ㆍ정진석기자>이병규ㆍ정진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