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고려대가 학내분규로 큰 홍역을 치를 때 일부 학생들은 인촌 김성수선생 동상을 검은 천으로 뒤집어 씌우고 밧줄로 꽁꽁 묶었다. 동상을 묻어버릴 구덩이도 팠었다.그런 상태로 엿새가 지났을 때 동상의 결박을 풀고 구덩이를 도로 메운 것은 졸업생 선배들이었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달래고 꾸짖으면서 사태수습에 나섰고 선후배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한마당 잔치도 열기로 약속했었다.
그 약속은 지난 5월26일 고대 교우의날 행사로 지켜졌다. 운동장을 메운 졸업생 재학생 1만여명은 행사를 통해 그들이 선후배이며 고려대가 「우리 학교」임을 확인했다. 그뒤 모교출신 교수가 첫 직선총장이 됐다.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이 일련의 과정에서 동문들의 보여준 노력은 전통과 학풍,선후배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88년 11월의 총장직선을 계기로 그동안 누적됐던 문제가 폭발해버린 세종대의 경우는 재학생 대다수가 유급당할 최악의 상황이 되기까지 동문들의 중재나 수습노력이 거의 없었다.
학교가 변해버린데다 동문회 자체가 2원화 돼 있는 것이 첫번째 이유일 것이다. 47년에 문을 연 서울가정보육사범학교가 54년에 수도여사대가 되고 79년부터는 남녀공학의 세종대로 명칭까지 바뀌어 학교의 성이 달라짐으로써 선배들은 「우리학교」를 상실해 버렸다.
그들은 지금의 학생들을 후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 그들 대부분은 사태를 지켜보면서 혼자 한심스러워 하고 걱정해온,사회적 활동이 미약한 주부들이다.
또 하나 세종대 선배들에게는 자신들이 재학중 숱하게 경험한 족벌운영의 폐해가 이번 일을 계기로 고쳐지기를 바라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 같다. 『그사람들은 좀 당해야돼』,『우리때는 상상도 못한 일인데 남학생들이 들어오니까 학교를 바로잡으려 하는구나』하는 방관심리다.
그런 세종대 동문들에게 문교부는 세종대 구성원과 동창회 학부모 등으로 대학정상화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2학기 개강전까지 정상적 학사 운영대책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의문이지만 대책위원회의 구성원중 그래도 중립적으로 사태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동문들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학생들에 의해 재단편이라고 의심받기 쉬운 동문회 간부위주로 구색갖추기식 구성을 해서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먼 발치에서 지켜만 보아온 동문들이 우리나라 중등교육에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적극 나서서 「우리 학교」를 찾으라고 권고하고 싶다. 세종대의 동문들은 이번 사태에서 재학생들과 마찬가지이거나 오히려 더 정도가 심한 피해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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