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는 5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80년 봄이었던가,둔촌동쯤이었던가,어느 신축아파트공사장에서 자살사건이 발생해 달려갔을 때 현장은 이미 말끔하게 치워진 뒤였다. 국민학교 5학년 어린이가 뛰어내렸다는 아파트 5층의 통로에서 나는 도색작업이 갓 끝난 벽에 파란 색연필로 선명하게 씌어진 유서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나는 지금 막 떨어짐 떨어져 죽음」
불과 13자로 객관화한 자신의 죽음,삶의 건너편을 들여다보는 듯한 냉정함,어미를 ㅁ으로 처리함으로써 획득한 함묵군더더기 없는 유서앞에 망연히 선채 나는 감탄,감탄하였다. 그 아이는 대단한 시인이었다.
자살의 동기나 가정사정은 전혀 기억나지 않으며 취재수첩도 망실한지 오래지만 글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뒤의 인상적인 자살사건은 86년 1월 중3여학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유서를 남긴 것이었지만 연극과 영화,구호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에 입때가 묻을수록 절절한 절규는 퇴색돼가는 느낌이었다.
인간은 스스로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나 세상과의 근본적 불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후수단으로 탈육체화를 선택한다.
인간만이 자살을 할 수가 있다. 독일어에는 고맙게도 자살을 뜻하는 단어가 두개 있다. 자기살해라는 의미인 Selbstmord외에 자발적인 죽음,자기의사에 의한 죽음이라는 의미에서의 Freitod가 또 있는 것이다. 자살도 삶의 완성형태중 한가지라는 점이 인정된다면 Freitod로서의 자살은 동정이나 연민,비난대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자살을 나는 헤밍웨이의 경우에서 보게 된다. 헤밍웨이는 「내 육체가 나를 배반했다」며 자신의 몸에 엽총을 쏘아 정열적으로 살아온 작가로서의 삶을 완성해냈다.
그러나 참을성이 모자라고 만족지연의 훈련이 안돼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은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가족과 학교 사회에 타격을 주는 극단적 공격행위인 경우가 많은것 같다. 문교부의 국회제출자료에 의하면 1학기중 중ㆍ고생 자살자가 71명이나 된다. 부모의 질책,가정불화,염세비관 따위가 원인이다. (문교부의 분류에는 언제나 입시부담감,성적하락 등의 항목은 빠져있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죽음의 의미를 올바로 가르쳐줘야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극복과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존재이며 죽음은 삶을 통해 완성해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줘야 한다. 「파우스트」를 인용하면 인간은 노력하는한 방황하게 마련이다. 10대 시절에 자살충동에 빠지고 유서를 써본일이 없는 사람의 삶은 가엾은 것이지만,그 방황과 자기부정의 욕구를 극복한 경험은 성장의 좋은 밑거름이 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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