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주류 일보다 정교 “우리가 일에 전수”/곽전면에 붉은 칠한 목곽묘는 첫 발견/미해결 가야사 복원에 획기적 계기로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처음으로 금관가야 왕묘가 발견된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 고대사연구에 미해결의 장으로 남아있는 가야사의 실체규명은 물론 일본측이 주장해온 임나일본부설을 뒤엎는 획기적인 발굴로 평가된다.
특히 지난 6월21일부터 대성동 고분군을 발굴해 오고 있는 경성대박물관의 조사단장 신경철교수(경성대 사학과)는 『현재 조사가 진행중인 1호 분에서도 금제말장식이 쏟아져나와 이 대성동 고분군이 금관가야 왕들의 묘가 밀집된 왕릉군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이번 발굴이 4세기를 전후한 금관가야사를 거의 완전하게 복원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해의 금관가야는 고령의 대가야ㆍ소가야ㆍ함안의 아라가야,성주의 성산가야 등보다 그 시대가 앞선 가야사의 출발지이자 가야문화의 심장으로 이 금관가야가 규명되어야 가야사 전체가 복원될 수 있다.
○일제 발굴실패
이 때문에 일제침략기부터 일본인 학자들은 가야문화의 심장부인 김해지역을 여러차례 파헤쳤으나 끝내 왕묘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번에 경성대박물관이 발견한 금관가야 왕묘는 구릉의 정선부에 축조되어 그 위치로 인해 가장 먼저 조사가 시작된 대성동 고분군 2호분이다.
발굴된 왕묘는 남한에서 발견된 최대 규모의 대형 목곽묘로 길이 8m45㎝ 폭 4m36㎝ 깊이 1m55㎝의 주곽과 길이 3m35㎝ 폭 4m20㎝ 깊이 80㎝의 부곽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왕묘도 현재 발굴이 진행중인 1호분은 길이 8m6㎝ 폭 4m10㎝ 깊이 약 3m이다.
이 2호ㆍ1호 고분은 모두 봉토가 원형인 백제ㆍ신라시대와 달리 방대형인 것이 특징이며 장송시 장엄한 의식을 행하였음을 뜻하는 주(붉은 칠)가 목곽전면에 발라져 있고 이런 목곽묘는 첫 발견된 것이다.
○3백여점 출토
철제갑주류ㆍ마구류ㆍ무구류ㆍ토기류 등 3백여점이나 출토된 유물중 주목되는 것은 금속유물인 파형동기 1점과 통형동기및 갑주류들.
이 유물들은 일본의 임나일본부를 뒤엎는 결정적 자료들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4세기 파형동기를 비롯,통형동기는 일본의 긴키(근기)지방을 중심으로 이번 금관가야 왕묘보다 뒤늦은 시기의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 많아 이들 유물은 당시 금관가야의 활동영역이 일본에까지 확산됐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가야활동 일까지
그동안 4세기말에서 5세기의 갑주들이 일본의 고분에서 2백여개 출토되었으며 영남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것들이 발굴된 점을 들어 이들 일본학자들은 임나일본부존재의 근거로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 출토된 갑주류는 일본출토품보다 정교하고 그 유형이 더 앞선 것으로 판명돼 이 시대문화가 금관가야에서 일본쪽으로 흘러들어갔음을 입증하고 있다.
○철장악 강력집단
신경철교수는 이외에도 대형철정이 열겹으로 쌓여 1백50여점이나 출토되는등 철제류가 다량 나온 것은 금관가야가 정치집단으로 철을 장악한 강력한 집단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토기류 유물도 이번처럼 장식성이 풍부한 원저장경호는 첫 출토되는 것으로 고령지역 대가야 출토토기보다 조형이고 신라토기의 섬세함에 영향을 미친 것을 증명해준다.
경성대박물관은 이에따라 김해 대성동 고분군을 1호 분에 이어 9월부터 전면 발굴에 들어갈 계획이다.<최성자기자>최성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