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지 않아도 학점 나온다/정치화로 학문영역 고사/간판획득 직업훈련소로/「부끄러운」논문 양산… 다양화ㆍ특성화 시급우리나라 대학현실을 위기상황으로 진단하고 각계에 대학을 살리자는 건의문을 발표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6일 대학교수와 대학관계자 2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실상을 신랄하게 분석하고 대학이 나가야할 방향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21세기를 지향하는 대학의 장기발전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63빌딩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은 다가올 정보사회에서 대학이야말로 국가사회발전의 중핵이라고 강조하고 대학의 교육과 연구기능이 회복되지 못하는한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발표논문 5편중 2편을 요약,소개한다.
◇21세기를 지향하는 대학 장기발전 방향(정범모ㆍ한림대교수)=한나라의 대학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맥없이 가르치고,연구는 하되 용렬한 연구밖에 못하고 있다면 미래에 대비함을 논하기 앞서 먼저 그 기초적 기능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한국 대학들은 교육의 수월성,연구의 탁월성에 이르기까지 갈길이 멀다.
21세기를 지향하는 대학과제의 으뜸은 21세기에 들어서기 전에 이같은 기초적 기능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계속적인 재정투자와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예컨대 교수대 학생비율의 개선,교육연구기자재의 충실,연구비풍족 등이 충족되지 못하면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교수는 가르치고 연구하며 학생은 학습한다. 그러나 우리대학은 데모등 여러 이유로 한 학기를 거의 공부하지 않아도 학점이 나온다. 대학당국은 기준미달인 것을 알면서도 적당히 편법으로 눈감아 준다. 그런 관례가 남아 있는한 아무리 재정투자를 해도 질적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
미래사회의 근본적 특징은 정보사회일 것이다. 이는 지식정보의 생산 정리 저장 재생 전달 활용이 가장 주된 산업이다.
지식의 생산과 전달을 직무로 하는 대학은 정보사회에서 점점 더 사회의 중심에 놓일 수 밖에 없고 중핵의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대학은 다양화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단일성을 지닌 「유니버시티」가 아니라 다양성을 지닌 「멀티버시티」일 수 밖에 없다.
대학은 사회의 다양한 교육적수요에 부응해야 하며 다양한 지능분포의 학생,다양한 학습동기를 지닌 학생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는 사회적 압력을 받고 있다. 대학은 다양한 연구와 교육을 하되 그 내용은 대학과 대학인 자신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대학이 다양화할수록 정치적으로 상업적으로 이용당하는 프로그램이 끼어들기 쉽기때문이다.
너무빨리 다가오는 미래를 예견하고 감시하고 경고할 수 있는 적임자는 바로 대학과 대학인이다. 미래감시의 역할이야말로 넓은 의미에서 가장 긴요한 대학의 사회봉사가 될 것이다.
◇교육과 연구의 정상화(김경동ㆍ서울대교수)=우리나라대학중 교육기관으로서의 1차적 기능이상을 수행하는 학교는 없다. 대학을 입신양명과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보는 사회의 인식속에 대학은 기술관료의 양산소,직업훈련강습소로 전락했다.
60년대이래 지속적으로 강화된 대학의 정치화ㆍ이데올로기화는 학생들의 반지성주의 성향과 대학의 권위실추로 이어져 대학의 학문적 성역이 철저히 짓밟혔다.
정부와 대학당국의 투자외면은 연구의 부실화를 초래했고 엄격한 평가제도가 결여된 상황에서 질적 수준이 부끄러운 논문ㆍ보고서들이 양산되고 있다. 또 학문영역별 연구비지원의 불균형은 결과적으로 대학과 교수개인들사이에 일종의 계층화를 초래,우리의 교수들은 교육도 충실히 못하고 연구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대학의 왜곡된 굴레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의식에 갈피를 잡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교육과 연구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첫째,대학목표의 이중성인 교육과 연구를 조화롭게 추구,이상적가치와 현실적용도를 모두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모든 대학과 모든 학과,모든 교수가 모든 기능을 다하겠다는 의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대학원중심대학,이공계중심대학,인문사회계중심대학 등 대학특성을 확실히 하고 교수도 교육 연구 행정기능별로 역할분담을 해야할 것이다.
셋째,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정책당국이나 대학당국은 과감한 인식의 대전환을 서슴지말아야 할 것이다. 특정 세력이나 계층,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를 초월하고 투자는 대폭 늘리되 대학의 자율성은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이 아무리 직업훈련을 필요로 한다해도 기본적으로는 교양인을 기른다는 가치목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목표를 이룰때 대학은 백화점식 교육,전공포식 교육,실용위주교육의 기형아적 병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보화시대인 미래는 창의와 두뇌만이 인류의 행복을 기약하는 시대이다.<한기봉기자>한기봉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