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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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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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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에는 증상이 있다. 맥박이 뛰고,그래서 낯이 붉어지고,식은 땀이 나고,말을 더듬고,눈을 깜빡이고…. 이른바 「거짓말의 생리」란 것이다.이 증상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가 있다면,우리는 거짓말을 간파할 수가 있다. 거짓말 탐지기에 쓰이는 GSR(피*전기반사)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 탐지기는 일정한 실험조건을 갖추어야 검사가 가능하다. 이런 어려움 없이 거짓말의 증상을 진단할 꼬투리가 사람의 목소리라고 한다. 「거짓말의 생리」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이 이에 동의한다.

실제로 여기에 착안한 거짓말탐지 전화가 미국에 등장한 것은 벌써 10년전의 일이다. 상대방목소리의 긴장도를 측정해서 그 정도가 지나치면 빨간 불이 켜지는 전화기다. 값은 1천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만일 이런 거짓말 탐지장치가 믿을 만한 것이라고 하고,그런 장치를 3일 하오 우리 국회 마이크에 연결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날 국회는 개회벽두 강영훈총리를 연단에 세웠다. 총리는 미리 준비된 사과문을 읽었다. 『본인은… 홍기훈의원께서 제시한 「1987년도 특별기금확보 계획서」에 명시된바,국가예산중 5백52억원의 지역사업비가 선거연도에 선심용 지역사업비로 쓰인데 대하여…』아마 이 대목에서 거짓말탐지장치에 빨간 불이 켜졌을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총리자신이,이 대목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니까­총리 스스로 국회에서 거짓말을 했노라고 해서 사표까지 냈다니까,그 빨간 불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었을 것도 틀림이 없다.

모처럼의 임시국회를 공전시켰던,이른바 서울시예산의 전용문제는 현임대통령선출의 정당성과도 관련되는 중대사안이다. 그런 사안을 여야의 협상으로 얼버무린데 대한 시비는 마땅히 따로 가려야할 것이지만,그 귀추는 여야가 합의한 소위의 조사결과를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얼버무림에 한 몫을 한 국무총리가 스스로 거짓말을 했노라고 하는 사태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왜 그는,그의 소신이 그럴진대 거짓말을 못하겠노라고 사전사표로 저항하지 못했을까. 마지못해 거짓말을 해야할 지경이었으면 그것으로 그칠 일이지,사후사표는 왜 냈을까. 또 그 사표는 반려하면 그만인 것일까.

여기 제기되는 문제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가 있다. 공직자의 거짓말은 어디까지 용인할 수가 있는가. 물음은 짧지만,단순하다면 아주 단순하고,복잡하다면 아주 복잡한 문제인 것 같다. 공직자가 거짓말을 하지말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논리요,당연한 윤리다. 그러나 공직자는 공직자이기 때문에 부득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벌써 묵은 얘기가 됐지만,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에피소드가 생각 난다. 그것은 80년 이란의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으로 온 미국이 홍역을 치르는 와중에서 사임한 사이러스ㆍ밴스 국무장관의 경우다.

인질사건이 터지자,카터 대통령은 사태해결을 위해 무력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이에 따라 밴스 국무장관은 유럽각국을 순방하며,미국의 무력불사용을 확약하고,그 대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유럽각국이 이에 동조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얼마뒤 카터 행정부는 인질구출을 위한 특공작전을 감행했고,작전은 무참한 실패로 끝이 났다. 작전 실패로 미국의 위신이 떨어졌음은 물론이지만 카터 대통령의 무력불사용선언이 거짓말이었다는 충격은 몇배 더 컸다. 밴스의 사임 발표는 작전실패 며칠 뒤. 그러나 그의 사표는 작전 개시 나흘전에 제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신문들은 그의 사임 배경을 여러가지로 분석했다. 대소정책에 대한 이견,브레진스키안보특보와의 불화,구출작전 결정과정에서의 소외등이 그때 거론된 사연들이다. 이 분석이 틀린것은 아니겠지만,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ㆍ사파이어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를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80년 5월1일자에 그가 쓴 칼럼은 밴스장관이 우방각국을 향해 했던 거짓말에 대해 스스로 인책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인질구출작전이 있기전에 사표를 냈고,작전의 비밀유지를 위해 사임은 작전뒤로 미루었다는 것이다. 본디 외교란 「나라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애국적행위」(『악마의 사전』)라고 하지만,그런 거짓말에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었더라는 얘기가 된다. 이것을 지나친 결별증이라고 만 할 수가 있을까.

사파이어는 미국 금융정책의 총수인 연방준비은행의 아더ㆍ번즈의장과 만나서 이 문제를 거론했음을 적고 있다. 뒤에 주서독대사를 지내며 독일사람들의 신망을 한 몸에 모았던 번즈는,그야말로 국사적인 인품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달러의 평가절하가 임박한 상황에서,거짓말을 해서라도 비밀을 지킬 것인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대꾸하더라고 한다.

『나는 그런 사태를 맞닥뜨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거짓말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담배파이프를 빨고 나서,말을 잇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자리를 물러날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가 퍽 감명 깊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런 것이 단순하다면 단순하고,복잡하다면 복잡한 공직윤리의 어떤 지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굳이 사사로운 감명을 여기 옮겨서,특정인의 거취를 운위할 생각은 없다. 그저 만사가 분명치 못한 우리 정치권의 여와 야,그리고 정부의 작태가 답답한 나머지,남의 나라의 묵은 에피소드를 상기한 것 뿐이다. 이번 예산전용시비가 드러낸 것­그것은 실체적 진실에 대한 집념도 없고,실체적 책임에 대한 의식도 없는 정치풍토요,도의감각의 수준이 아닐까 한다. 총리한사람의 진퇴를 거론하는데 그칠 문제가 아닌 것이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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