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유」차별등에 불만 폭발/다당제등 민주화확대 불가피/서방경원 긴요로 강경책 어려워… 출국 허용할듯알바니아가 수도 티라나에서의 반정부 소요발생후 외국대사관으로 피신한 수백명의 시민들에게 출국을 허용하는 한편 최고지도부에 대한 전격교체를 단행할 것이라는 보도는 알바니아가 이제 더이상 「제한된 개혁」으로는 버틸 수 없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번 상황은 동독 공산당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던 동독인들의 대규모 서방측으로의 탈출을 방불케 하고 있어 내무부와 보안담당자 등에 대한 일부 교체를 넘어서 라미즈ㆍ알리아 인민의회 간부회의의장(국가원수)을 포함,공산당 자체의 행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방 관측통들은 2주전에 발표한 알바니아정부의 여행자유화 조치가 차별적으로 적용됨으로써 당초의 기대를 좌절과 분노로 돌변케한 것이 이번 사건을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알바니아는 지난달 21일 개혁조치의 일환으로 16세 이상의 모든 시민에게 유효기간 5년의 여권을 신청할 자격과 권리를 부여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일부 특권층에만 여권이 발급돼 이같은 돌발사태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아무래도 라미즈ㆍ알리아 인민의회간부회의 의장(국가원수)의 개혁노선자체가 지닌 결함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스탈린식 강경공산주의자였던 엔버ㆍ호자의 뒤를 이어 85년 집권한 알리아의장은 올 4월부터 괄목할 만한 일련의 개방개혁조치를 취했지만 그것은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와 집권 노동당(공산당)의 일당독재 유지를 전제로한 불완전한 개혁이었다. 다당제실시등 정치적 다원화와 실질적인 민주화를 유보한 국내 개혁조치,예컨대 종교활동 자유화,반국가사범의 범위축소 및 처벌기준 완화,여자에 대한 사형제도 폐지 등은 억눌려온 알바니아인들의 민주화 개혁욕구를 충족시키기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
또 40여년간의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할 목적으로 취한 미소 및 유럽 각국과의 관계개선제안과 자국민의 해외여행자유화 조치도 원천적인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만일 무제한적인 개방과 해외여행자유화가 이루어질 경우,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압도적인 영향으로 인해 알바니아 지도부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의 유지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알바니아에선 개혁ㆍ개방노선이 공식표명된 지난 4월 이후부터 오히려 『수증기의 출구가 막힌채 끓고 있는 주전자처럼 폭발직전의 위기감이 감돌기 시작했다』고 현지 외교관들은 전한다.
즉 40여년간 통제ㆍ억압됐던 욕구가 불완전하나마 다소 숨통을 터준 개혁조치로 일시에 분출돼 팽팽한 긴장을 초래한 것이다.
이제 알리아의장의 신중하고 제한된 개혁노선으로는 알바니아 국민들의 고조된 개방ㆍ개혁 열기를 수습할 수 없음이 명확해진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망명요청자들의 처리문제다.
현재 서독 이탈리아 폴란드 그리스 체코 터키 중국 쿠바 불가리아 이집트 등 적어도 10개국 이상의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는 알바니아인들이 피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나라들중 중국 쿠바 불가리아 등 알바니아와 유사하게 불완전한 개혁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국가와 이집트는 알바니아와의 망명자 인도협정을 이유로 이미 망명요청자들을 알바니아 당국에 인도했다.
반면,서독과 이탈리아 등 여타나라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망명요청자들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밝히고 있다. 특히 서독 이탈리아 두 나라는 망명자에 대한 알바니아 경찰의 발포를 비난하고 이번 알바니아사태를 4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EC회담의 주요의제로 상정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알바니아 지도부가 망명요청자 처리문제에 강경대응함으로써 EC회원국들과 대립을 자초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될 경우 EC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극심한 경제난을 타개하려는 알리아의장의 구상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하비에르ㆍ페레스ㆍ데ㆍ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의 방문을 이틀 앞두고 개혁조치를 단행할 만큼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에 노력을 쏟은 알리아의장의 속셈이 궁극적으로는 알비니아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회원국이 됨으로써 신유럽의 일원이되는 것임을 감안할때 강경책을 쓸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결국 알리아의장은 망명요청자들의 출국을 어떤 형태로든 허용할 것이며 그 대가로 이미 경제적인 협력관계가 모색되고 있는 서독 및 이탈리아로부터 실리를 취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또 국내상황대처에 있어서도 더 가시적인 개혁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어차피 다당제 도입을 통한 정치적 다원화의 코스로 가야할 것이다. 이번 망명사태는 집권공산당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제한된 개혁조치로는 더이상 동구에 불어닥친 민주화 열풍에 대처할 수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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