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상오 10시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 5개월만에 마주 앉은 얼굴에는 언뜻 긴장의 빛이 어렸다.『70년대초 남북대표들의 남북조절위가 서로 왕래하기 시작하자 서독사람들이 몹시 부러워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남북한이 동서독보다 먼저 통일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18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뒤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남북대화에 성과가 없어 겨레에 면목이 없습니다』
남북 고위급 예비회담 우리측 대표단의 송한호수석대표와 북한측 백남준대표단장은 20년가까이 끌어온 남북대화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데 대한 자탄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부끄러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회담직전 이들의 얼굴에 비친 긴장감은 남북대화에 쏠린 국내외 관심에 대한 부담때문인 듯했다.
전세계가 군축을 외쳐대고,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이념보다는 인간을 찾기 위해 급격한 변신을 하며,한때는 적이었던 한소 양국의 정상이 만나 굳은 악수를 하는 마당에 남북한만이 냉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회담대표들에게 남다른 중압감을 주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회담이 열리기 직전,취재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가벼운 신경전을 벌이던 남북한 기자들 사이엔 또다른 대화가 오갔다.
『얘기를 잘 들으려면 수석대표 옆에 바짝 붙어야 돼』
『그러니까 잘 들리도록 시설을 똑바로 해야지』
별 것 아닌 대화속에 들어있는 대결의식의 일단은 50m밖에 실재하는 군인들의 대치상황보다도 더욱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1시간후,판문점회담 개최이래 가장 빨리 합의를 도출해내고 회담이 끝나자 남북한 기자와 관계자들은 모두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못하는 상태였다.
18년전 남북이 서로 밀사를 보내 교섭한 끝에 7ㆍ4공동성명을 냈을 때 우리 민족은 물론 전세계가 놀라움과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와 많은 상황이 흡사하다. 데탕트가 신 데탕트로 바뀌었고 남북한 모두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18년이란 세월을 딛고 새출발을 하는 지금 우리 민족이 되새겨야 하는 교훈은 믿음의 회복이라는 원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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